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를 겨냥해 우회적이지만 확실한 반대의 뜻을 표명한 것은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는 일본을 국제사회의 지도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부가 줄곧 안보리 개혁 방향의 3원칙(민주성·책임성·투명성) 형태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제동을 걸어왔지만 국가 정상이 ‘육성’으로 반대 입장을 드러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박 대통령의 ‘작심 발언’ 뒤에는 현 일본 지도부의 역사인식과 이에 기반을 둔 행태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인식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부당한 역사 왜곡과 몰역사적인 인식을 숨기지 않고 주변국들과 충돌하는 잇단 도발 행보를 벌이는 상황에서 일본이 무슨 자격으로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보를 논하는 상임이사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이번 입장 표명은 단순한 일본의 상임이사국 반대 차원을 넘어선다. 아베 총리가 적극적 평화주의로 포장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고 올해 안에 마무리 지으려는 평화헌법 개정 추진의 노림수에 앉아서 당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박 대통령이 최근 인도·스위스 순방을 계기로 가진 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도발을 직접 겨냥해 비판의 수위를 높여왔다는 점에서 이날 입장도 이미 예고돼 있었다. 박 대통령은 “현재의 일본 지도자들도 무라야마(村山) 또는 고노(河野) 담화를 승계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진정성을 의심 받을 만한 언행은 삼갔으면 좋겠다”(14일 CNN 인터뷰), “한국과 입장을 바꿔놨을 때 (한·일) 두 나라 관계가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 갈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역지사지로 생각했을 때…”(13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라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방영된 인도 국영방송 두르다르샨TV 인터뷰에서는 유엔 안보리 개혁과 관련, 책임성·민주성·대표성·효율성 등의 4원칙을 새로 정리했다. 외교부 조태열 제2차관이 16일 멕시코의 푸에르토 바야르타에서 ‘상임이사국 증설 반대 중견국가 그룹(UfC)’ 차관급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UfC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돈 외교’를 통해 상임이사국 진출 로비를 벌이는 데 제동을 거는 모임이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부는 안보리 위주의 비민주성을 지적하고 책임성이 더 증대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박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비상임이사국을 늘려 참여성·책임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인도·스위스 국빈방문과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인 다보스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뉴델리 =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