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가수에겐 영상이, 밴드에겐 음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습니다. 이 기본 중의 기본을 지난해 말 지상파 방송사들이 놓쳐 또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KBS ‘가요대축제’(12월 27일)에서 몇 곡을 부른 이승철은 무대가 끝난 뒤 강한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그는 “밴드와 오후 1시 30분부터 리허설을 했는데, 막상 생방송 때는 인이어(In-ear·무대에서 쓰는 이어폰)에 음향이 들어오지 않아 무대 밖 음향을 듣고 노래를 힘들게 마쳐야 했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무반주로 노래할 걸 그랬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이 생방송을 지켜 본 시청자들은 수 시간씩 공들여 밴드와 호흡을 맞춘 이승철에게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소 음악의 질을 위해 음향과 조명 회사까지 차린 그의 넘치는 의욕을 고려하면, 생방송 무대가 준 모욕은 그에게 깊은 상처로 남을 듯합니다.

특수 무대까지 만들어 호화 잔치를 벌였던 SBS ‘가요대전’(12월 29일)은 퍼포먼스가 중요한 댄스 음악을 하는 아이돌 그룹에 적지않은 실망감을 안겨줬습니다.

문제는 카메라. 지드래곤과 태양의 합동 무대 때는 카메라가 지드래곤을 따라가지 못했고, 이효리의 무대 역시 카메라는 무대 바닥을 향하는 등 산만한 영상으로 일관해 시청자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지드래곤과 이효리는 방송이 끝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이구동성으로 ‘카메라’를 우회적으로 지적했습니다.

무대는 가수들에게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런 생명의 현장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제작진의 실수는 음악에 대한 몰이해(沒理解) 때문입니다. 어떤 가수가 무대에 설 땐, 적어도 그 가수가 노래할 곡의 파트(연주, 사운드, 가창)를 훤히 꿰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카메라가 어떤 연주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가늠해 최적의 영상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음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프런트맨인 보컬의 인이어 이어폰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라면, 다른 파트의 사운드 밸런스나 모니터도 망가졌을 게 뻔합니다.

조용필은 1980년대 후반, 1등의 자리에 있을 때 방송과 인연을 끊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한번은 TV 음악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베이스나 드럼 소리가 잘 안들리게 세팅을 해놨더라고요. 명색이 밴드(‘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인데, 방송에서 그걸 잘 서포트해주지 못했어요. 그게 싫어 TV를 안하겠다고 선언했죠. 그 뒤부터 라이브 무대만을 고집한 거예요.”

외국의 유명 아티스트들은 방송 대신 무대를 고집하고, 무대에선 언제나 자신의 엔지니어를 대동하고 사운드를 맡깁니다. 무대를 ‘가볍게’보는 제작진의 태도가 계속되는 한, TV에서 인기 가수나 뮤지션을 볼 날도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