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목화가 창단 30주년 기념 공연으로 연극 ‘자전거’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지난 5일부터 2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스타시티 예술공간 SM에서 공연하는 ‘자전거’는 극단 목화의 이름으로는 지난 1987년, 2004년에 이어 세 번째로 무대에 올라간 겁니다. 목화의 대표적인 레퍼토리 작품인 것이지요. 극단을 이끌고 있는 오태석(74) 선생의 극작 및 연출작인 ‘자전거’는 6·25전쟁 당시의 상흔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근 30년을 살아남아 오늘날 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정밀한 시·공간적 배치를 통해 단순히 6·25의 상흔만이 아니라 현재 시점을 오버랩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과거 한때의 참상을 되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와 같은 비극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지요. 최소한의 무대 장치와 절제된 대사, 상징적인 극적 장면은 관객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막이 오르면 우선, 면사무소의 윤 서기가 무려 42일 동안 자신이 결근한 사연을 동료인 구 서기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그날 밤’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극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듭니다. 여자 귀신을 봤다나요 뭐라나요.

윤 서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뼈대로 구성돼 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겁니다. 마을 유지였던 아버지는 6·25때 반동분자로 몰려 120여 명과 함께 군청 등기소에 갇힙니다. 퇴각하던 인민군은 등기소에 불을 질러 이 사람들을 학살합니다. 따라서 마을엔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들이 즐비합니다. 한데 이날만 되면 작은아버지가 제사를 지내는 큰집을 찾아와 자신의 면상을 사금파리로 그어대며 자해하는 소동을 벌입니다. 그날 인민군의 총부리 위협에 못 이겨 불을 지른 이가 바로 작은아버지였던 겁니다.

또 하나의 뼈대는 윤 서기가 42일 전에 겪은 사건입니다. 마을 외딴 곳에 문둥이(한센병)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산골짜기에서 외롭게 살아온 부부는 네 아이를 낳았으나 모두 다른 집에 주고 맙니다. 아이들에게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었던 거지요. 아이들을 준 곳은 인근의 한 씨네 집입니다. 그런데 네 아이 중 장녀와 차녀는 자신들이 문둥이의 소생임을 알아 차립니다. 당연히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됩니다. 장녀는 동생만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잊고 살라고 차녀를 집에서 내보내고, 자신은 솔매집(문둥이집)으로 가서 불을 지릅니다. 그 사건 와중에 윤 서기는 길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집니다.

이 밖에도 몇 가지 상징적인 사연들이 있습니다만, 연극의 기본 뼈대는 이 두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두 사건에서 공통되는 것은 ‘방화’, 즉 불을 지르는 행위입니다. 한밤중에 저지르는 방화는 어둠 속에서 자행되는 악의 행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극의 말미에서 이야기를 듣던 구 서기는 윤 서기에게 지나가듯 말을 던집니다. “네가 불 지른 것 아니냐”고. 이 질문은 바로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역사적 참상이건, 한 마을의 비극적 사건이건 ‘나 자신’은 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거지요. 어떤가요. 연극을 통해 스스로 시험대에 올라서 보심이.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