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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일상, 법정에 서다 / 한국고문서학회 지음 /역사비평사

이 책은 ‘분쟁과 소송’을 통해 조선시대 생활상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고문서학회가 펴내고 있는 ‘조선시대 생활사’ 시리즈의 네 번째 책으로, 당시 문서로 남아 있는 소송 사례 등을 통해 조선시대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1535년 안계종의 아내 김씨의 ‘분급문기’를 보자.

“사위 장응필은 내 딸이 죽을 병을 얻어 고생할 때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딸에게) 죽을 날이 임박해오자 예천 집에 있던 딸의 재물을 모두 자기 노(奴)의 집으로 옮겼고…(중략)…(장모인) 내가 몸져누워 신음할 때도 한번 와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을 시켜서라도 문안 한 번 하지 않았으니 더욱 무정하다 하겠다. 이에 이미 허급(許給)한 노비라 하더라도 모두 빼앗아도 되겠지만…(중략)…딸의 봉사조(奉祀條)로 딸의 신노비(新奴婢) 등을 허급하니…”

무슨 말이냐 하면, 처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위에게 노비 일부를 떼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사위가 무척 괘씸하다. 죽어가는 딸을 돌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장모인 김씨에게도 문안 인사 한 번 오지 않았다. 이런 사위에게 왜 재산(노비)을 나눠준단 말인가. 지금의 기준으로는 의아심이 들 만하다.

조선시대 사위는 재산 상속에서 아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실제로 분재기(分財記) 등의 고문서를 보면 처가의 제사를 모시는 사위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위와 처가가 종종 갈등을 빚었다. 앞서 인용한 문서는 안계종의 처인 김씨가 딸과 자신을 돌보지 않은 사위가 무척 못마땅하지만 딸의 제사 명목으로 일부 재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흔히 ‘윤두서 초상화’로 잘 알고 있는 공재 윤두서(1668∼1715)의 경우 후손들이 무려 일곱 번이나 묘소를 옮겼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묏자리가 좋지 않다는 풍수가의 견해에 따라 길지(吉地)로 옮긴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천장(遷葬) 과정에서 문중의 다른 족인들과 소송까지 벌였다. 조상의 묘 윗자리에 후손의 묘를 쓰는 역장(逆葬)의 혐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책은 다양한 소송·분쟁 사례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의 자취를 더듬고 있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례들 속에는 상속·매매 분쟁 등을 비롯, 우리에게는 생소한 축첩(蓄妾)으로 발생한 첩 자녀의 신분 귀속 분쟁, 자매(自賣·스스로 자신을 파는 것) 분쟁, 묘지 분쟁 그리고 향촌 사림의 갈등과 공동체의 물싸움 등에서 빚어진 갈등과 분쟁 양상이 망라돼 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