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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뇌/마이클 D. 거숀 지음, 김홍표 옮김 /지만지

“당신의 위장은 스스로 생각한다.”

신경 위장관학의 대부로 컬럼비아대 해부학과에 재직 중인 저자는 ‘소화기관에 제2의 뇌가 있다’며 이같이 주장한다. 입에서 항문에 이르는 소화 기관이 중추신경계인 뇌나 척수의 지시 없이 외부의 자극에 대해 조건 반사할 수 있는 신경계를 가진 유일한 기관이라는 것이다.

소화기관이 제2의 뇌라는 저자의 주장이 다소 파격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음식이 몸 안에서 소화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다. 먼저 우리가 입으로 음식을 먹으면 식도의 근육이 움직여 음식물을 삼키고, 음식을 위로 내려가게 한다. 본격적으로 소화가 시작되는 위에서는 위산과 펩신이 나오는데 위산은 터미네이터 같은 인조인간의 쇳덩어리도 녹일 수 있지만 다양한 보호체계의 작동으로 인해 우리 몸은 녹아내리지 않는다.

또 기름진 반찬에 밥을 많이 먹어 위가 꽉 차도 음식물은 거꾸로 역류되지 않고, 위의 내용물이 십이지장으로 한꺼번에 몰려가지도 않는다. 조임근(괄약근)의 조절을 통해 음식물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식물이 일정한 방향으로 내려가고, 소화 효소든 위산이든 꼭 필요한 경우에만 분비되는 것은 바로 소화기관에 존재하는 신경계의 야전 사령부, 즉 제2의 뇌의 지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뇌에서 오는 신경계가 잘려도 소화기 신경계는 끄떡없고, 소화 기관은 자기 안에 들어온 음식물을 언제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저자는 이의 증거로 소화기관 내에 많은 양의 세로토닌이 발견된 것을 꼽았다. 세로토닌은 신경세포를 매개하는 신경전달 물질로 뇌를 제외하고 세로토닌이 발견된 것은 소화기관이 유일하다. 실제로 인체에서 만들어지는 세로토닌의 95%가 창자에서 만들어진다.

또 식도, 위, 대장에 존재하는 신경계를 모두 합치면 척수에 존재하는 신경계보다 더 많고, 소화 기관의 신경계는 중추 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전달 물질을 모두 갖고 있다. 위장관 신경계의 신경전달 물질은 중추 신경계에 비근할 정도로 복잡하다.

위, 식도, 소장, 대장까지 인간의 소화기를 이해하는데 30여 년간 헌신한 저자는 “인간이 먹이를 구하고 자손을 낳고 종족의 절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뇌의 심약한 인식체계를 넘어서서 음식물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기관인 신경계 덕분이었다”며 이렇게 단정한다. 소화기관은 못생겼지만 심장보다 현명하고 감정이 풍부하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