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대 여자들의 수다놀이에 잠시 끼어 연애 얘기를 들어보니, 매가리 없는 남자가 딱 질색이라고 하더군요. 자상하고 보드랍고 매너까지 좋은데, 뭔가 결정할 때 여자의 입장을 먼저 고려한다든가, 여자 생각에 맞춰 행동하는 남자에게 큰 매력을 못 느낀다는 게 ‘그들’의 공통적인 답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성들은 단순·무식한 남자를 선호할까요?

이럴 때 답을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남자에 대한 기호는 시시각각,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결정의 순간에 ‘한방’을 날릴 줄 아는 정열과 의지의 사나이에 호감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입니다.

모임의 한 여성이 이런 말을 꺼냅니다. “서로 마음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저를 확 잡아채는 결정적 단서를 제시하지 못해 계속 만남이 지지부진해요.” 요즘 남자들, 좀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 상할 것 같아도, 이 순간이 아니면 끝이라는 마음으로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는 용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상대방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이 용기는 유효합니다.

tvN ‘응답하라 1994’가 후반전에 돌입했습니다. 성나정(고아라)을 두고 벌이는 사랑 쟁탈전이 이제 막 쓰레기(정우)와 칠봉(유연석) 사이에서 시작됐습니다. 두 남자가 대결을 선포하고 시작된 쟁탈의 1막인 셈이죠. 현재 스코어는 쓰레기가 앞서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나정이 쓰레기를 흠모하고, 칠봉이 나정을 바라보는 짝사랑 구도를 고려하면, 쓰레기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쓰레기의 결정으로 나정과 쓰레기는 키스를 하며 연인 관계가 됐습니다. 칠봉이 우유부단한 건 아니지만, 짝사랑이라는 덫에 걸려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행동의 제약들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쓰레기가 나정과 만나기로 한 날, 나정이 갖은 핑계를 대며 만남을 피하려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장면에서 칠봉 같았으면 상대방 배려 차원에서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고 했을 법한 행동들을, 쓰레기는 “늦게라도 기다릴테니, 무조건 오라”고 ‘강제’합니다. 상대방의 배려보다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앞선 이 사랑의 열정은 이해와 배려라는 평등의식을 무참히 짓밟아버립니다. 사랑을 얻으려면 이기적이어야 합니다.

칠봉은 사랑을 좀 더 멀리 내다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뉴욕 양키스 포수 요기베라의 명언을 인용하며 기다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결혼이 별개의 문제라 하더라도, 칠봉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 건 결정적 ‘한방’ 부족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겠죠. 그를 위해 선곡합니다. 레니 크라비츠의 ‘It Ain’t Over ’till It’s Over(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