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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동서양을 꿰뚫다 / 박석 지음 / 들녘

서양에서는 초월적 성스러움을 강하게 발산하는 예수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던 반면, 동양에서는 왜 일상의 윤리를 강조한 범속한 공자가 성인으로 추앙받을까? 서양 사람들은 이분법을 좋아하는 데 비해 동양 사람들은 왜 많은 일을 두루뭉술하게 처리할까? 서양에서는 서사성을 중시하는 소설과 희곡이 발달한 반면, 동양에서는 서정성을 중시하는 운문이 주를 이룬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화는 화려한 채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 왜 동양화에서는 수묵과 여백의 미를 중시할까. 그리고 왜 서양 고전건축물의 주재료는 돌인데 비해 동양 건축물의 주재료는 나무인가?

동양과 서양,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근본적 차이부터 생활 습관 같은 상대적으로 사소한 차이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이 같은 의문들을 한 번쯤 떠올려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순간순간 떠오르는 분산된 질문으로 흩어지거나, 때로는 현재의 서양 중심 체제로 볼 때 서양문화가 동양에 비해 우월하다는 분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15세기 당시 가난하고 분열된 서양이 앞서있던 동양을 추월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동양에는 없었던 여섯 가지, 즉 과학혁명, 법치주의, 재산권, 의학, 소비문화, 프로테스탄트 직업 윤리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들은 결국 효용성과 시대의 승자가 되기 위한 경쟁력의 잣대로 동서양의 문화를 분석한 것으로 양 측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설명은 아니다.

인문학자이자 명상가인 박석 상명대 중국어문학과 교수의 책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책은 제목처럼 동양과 서양의 모든 문화를 꿰뚫는 하나의 코드를 제안한다. 이 코드를 통해 보면 종교와 철학은 물론 문학, 회화, 음악, 건축 등 문화의 전 영역에 걸쳐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이 정확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단순함의 위험이 있는 대신 동서양 문화 전체를 한자리에서 정리해내는 명쾌함의 위력을 보여주는 이 코드는 대교약졸(大巧若拙). 노자의 ‘도덕경’ 45장에 나오는 용어다. ‘큰 솜씨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서툴러 보이지만 실은 기교가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기교가 서툴 때는 밖으로 드러나지만 무르익게 되면 오히려 다시 감춰져 서툰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졸에서 교로 갔다가 다시 졸로 돌아오는 구조, 헤겔의 변증법 같은 나선형 구조다.

대교약졸과 손을 잡고 있는 또 다른 코드로 저자는 역시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을 제시한다. 빛을 감추고 티끌로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초월적 성스러움과 일상적 범속함을 통합하는 세계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100여 권의 책을 섭렵했다는 저자는 대교약졸과 화광동진이야말로 동양문화의 밑바닥을 흐르는 근본적 특징이라며 대교약졸을 키워드로 동서양의 철학, 종교, 문화 전체를 해석해 낸다. 이 틀에 따라 저자는 서양 문화 대 동양 문화를 화려미 대 소박미, 다채미 대 단순미, 농염미 대 평담미, 집중된 통일미 대 분산된 통일미, 진경을 부각시키는 아름다움 대 배경과의 조화미, 그리고 이 전체를 아울러 발산미 대 수렴미라고 정리했다.

겉으로 보면 서양은 교, 동양은 졸일지 모르지만 좀 더 깊게 보면 졸은 단순한 졸이 아니라 대교약졸의 졸, 나선형의 통합구조 안에 반대 개념까지 끌어안은 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예술은 분산적 통일미를 강조한다. 회화를 보면 서양 회화는 초점 투시를 위주로 그리기 때문에 하나의 그림에는 하나의 시각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중국 회화는 산점투시(散點透視)이기 때문에 하나의 그림에 여러 개의 시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양 건축물은 하나의 덩어리로 이뤄진 반면, 중국의 대표적 건축물인 궁전이나 사원은 넓은 공간에 산재해있다. 언뜻 보면 하나로 집중된 서양의 성당이나 궁전보다 통일미가 느껴지지 않지만 이는 분리된 공간의 개성을 살리면서 거시적 안목에서 나름의 통일미를 이루고 있다.

또 서양의 오케스트라에는 반드시 지휘자가 있지만 중국 전통음악 합주에는 지휘자가 없다. 각각의 악기들이 제각기 놀면서 전체 호흡을 맞추기 때문이다. 다만 집중적 통일미, 화려한 다채미, 발산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저자는 근대 이후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에 압도돼 문화에서도 그들의 관점을 쫓아가면서 동양인들은 알게 모르게 서양에 비해 열등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서양은 교로 동양은 교를 넘어선 졸로 보는 저자의 분석은 서양에 대한 동양의 우위를 외치는 것인가. 저자의 의견은 ‘그럴 필요가 없다’이다. 아름다움에는 객관적 기준과 서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적어도 우리 문화의 위치, 그 장점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 600쪽의 만만찮은 분량에 대교약졸의 미학을 풀어낸 저자의 결론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