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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일까. 아니 진실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진지한 답을 들려주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오는 24일까지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하는 연극 ‘천국으로 가는 길’(사진)이다.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극작가인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인 ‘천국으로 가는 길’은 나치 독일이 수용소를 방문하는 적십자단을 속이고, 국제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수용소 안에서 꾸미는 연극을 보여준다. 실제로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체코의 수용소 일부를 수리하고 유대인들을 동원, 좋은 수용소라고 선전하는 영화를 찍어 적십자에 보냈다. 이 같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쓰여진 ‘천국으로 가는 길’은 유대인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맡아 수용소 광장과 벤치에서 연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연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를 방문했던 적십자 대표의 기억으로 시작한다. 적십자 대표는 그곳에서 독일군 사령관의 연출하에 유대인들이 만든 거대한 연극을 보게 된다. 나치 사령관이 기획한 이 연극에서 유대인 수감자들은 각자의 역할을 맡아 충실하게 연기한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 올라서지 않기 위해서다.

극의 제목이기도 한 ‘천국으로 가는 길’은 독일어로 힘멜베크(Himmelweg). 극 중 유대인 수감자는 이렇게 말한다. “‘힘-멜-베크’라고 발음합니다. 한 단어 같지만 사실 두 단어예요. 힘멜은 천국이란 뜻이에요. 베크는 길이구요. 힘멜베크, 천국으로 가는 길. 여기서 처음 들었어요. 바로 이곳에서.” 즉 힘멜베크는 가스실로 가는 길을 뜻한다. 이 길에 올라서지 않기 위해 유대인 수감자들은 나치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철저히 연기를 수행하는 것이다. 결국 이 거대한 사기극에 속아 넘어간 적십자 대표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들은 제게 묻지요. ‘소각로는 봤습니까’ ‘기차가 오는 걸 봤나요?’ 아니,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연기는요? 재는요?’ 아니요.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게 거기 있었지만 저는 아무것도 보질 못했어요.”

인간이 공포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천국으로 가는 길’은 또한 ‘연극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기도 하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연극 속 연극은 삶의 이면을 드러내기는커녕 진실을 감추는 데 일조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 또한 연극처럼 진상(眞相)을 가리고, 보기 좋은 면만을 우리 눈에 비추는 것이 아닐까. 김동현 연출, 백익남·강명주·오대석·윤현길·이지현·전박찬 등 출연. 02-889-3561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