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부터 연봉 5억 원이 넘는 기업의 등기이사 보수 공개가 의무화된 가운데 국내 500대 기업 중 등기이사 평균 연봉이 5억 원을 넘는 곳은 176개사, 연봉 공개 대상은 536명에 달할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오너 일가가 등기이사로 있는 기업은 96개사, 인원은 93명으로 파악됐다. 재계에선 이 같은 보수 공개 의무화 조치가 지속될 경우 이를 빌미로 반(反)대기업· 반부자 정서가 더욱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18일 기업경영 평가기관인 CEO스코어가 이달 말부터 연봉 5억 원 이상인 등기이사의 개인별 보수를 공개하도록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비상장사를 포함해 국내 500대 기업의 등기이사 보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개별 그룹별로 살펴보면 삼성그룹과 신세계그룹 오너 일가는 대부분이 미등기임원이어서 연봉 공개 대상이 아닌 반면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한진, 한화 등 대다수 그룹들은 오너 일가가 등기이사를 맡고 있어 세부 연봉이 공개될 전망이다. 삼성그룹 오너일가 중 연봉공개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이건희 회장의 장녀로 호텔신라 등기이사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과 사위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 등 나머지 일가는 모두 미등기 임원이다.

정용진 부회장과 이명희 회장, 정재은 그룹 명예회장,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 신세계그룹 오너 일가는 모두 미등기 임원으로 빠져 있다. 기업 오너 일가의 연봉공개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 고액 연봉을 받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었던 담철곤 오리온 회장 등도 등기이사직을 사퇴했다.

이에 대해 재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 법안의 취지는 기업이 임원들에게 과도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을 감시하겠다는 것이지만 자칫 임원들과 평직원 간 연봉격차가 주기적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면 반기업정서만 확산시킬수 있다”고 말했다.

노기섭 기자 mac4g@ 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