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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금융시대 / 로버트 쉴러 지음, 노지양·조윤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금융은 인간의 온갖 활동을 촉진하면서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면 당장 엄청난 욕을 들을 것이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로 금융(또는 금융업자)은 위기의 주범이자 ‘탐욕의 덩어리’로 지탄받아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쉴러는 과감히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저자인 쉴러는 “금융은 인간의 욕망과 가능성을 다루는 분야”라며 “우리의 삶과 생활을 구성하는 하루하루의 활동을 수월하게 해주고 간편하게 해준다. 이런 목적을 띤 활동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단언한다.

이 책은 오늘날의 암담한 금융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금융이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을 검토한 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금융이 도움이 되어 왔음을 상기시킨다. 역사적으로도 금융은 산업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시장의 리스크를 일정 부분 흡수해 왔으며 산업혁명, 최근의 정보디지털 시대를 앞당기는 데 기여해 왔음을 누누이 강조한다.

금융에 대한 저자의 근본적인 인식은 이렇다. “고대 사회에서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때부터 현대 사회에서 모기지 시장과 이걸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법적 규제를 만들기까지 금융은 혁신하며 진화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금융은 미래를 위해 제대로 설정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금융은 인류의 행복과 성취, 그리고 더 좋은 사회라는 목표를 실현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체험한 사람들은 이제 금융 자체를 비난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금융과 연관시키고 있으며, 특히 금융업계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에 대해 큰 불만을 드러내 왔다. ‘금융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사람들에게 마치 혐오의 대상인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보수파였던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조차 이렇게 말했다. “금융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왜곡한다. 그저 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로 변명하는 시스템일 뿐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나 역시 이러한 발언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금융자본주의가 가진 혁신의 힘을 제한하기보다는 활용할 때 그 지평을 넓힐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입장을 좀 더 알기 쉽게 풀어보자. 그는 금융위기 당시를 “마치 고속도로에서 모든 차들이 규정 속도보다 조금씩 빨리 달리는 것 같았다”고 비유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선의의 운전자들도 규정을 위반하게 된다. 즉 운전자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설계된 고속도로가 문제인 것이다. 금융위기도 마찬가지로 금융기관들이 범죄자인 게 아니라 그러한 집단적 오류를 만들어낸 금융 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바람직한 금융의 미래상은 무엇일까. 쉴러는 “금융의 민주화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참여의 성격과 정도를 개선하도록 요구한다”면서 “여기에는 금융 시스템의 작용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대중은 신뢰할 만한 금융 정보를 제공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는 전문 자문가, 변호사, 교육자들에 의해 제공될 수 있지만 현재 대다수 일반인들은 이런 정보를 거의 혹은 아예 얻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정보기술의 진보는 금융혁신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것”이라며 “금융의 민주화에는 금융의 인간화가 함께해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