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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의 세계사 / 휴 앨더시 윌리엄스 지음, 김정혜 옮김 / RHK

“납은 물리적·지적으로 중력의 실체를 보여준다. 또한 죽음과도 가장 밀접하게 관련 있는 원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납빛 하늘이라고 말할 때 단순히 하늘의 색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중력의 측면에서 볼 때 불가능한 이런 이미지는 비보다도 더 나쁜 불길한 무언가를 전조한다. 가령 어떤 세상의 운명이 뒤집혔다는 전조 말이다.”

과학저술가 휴 앨더시 윌리엄스가 쓴 이 책의 소재는 주기율표 속 원소들이다. 그렇다고 화학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교과서에 박제된 원소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살아 숨 쉬는 원소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원소들을 주기율표에 나오는 순서대로 열거하거나 각 원소의 성질과 용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다른 책에 맡기겠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은 원소들의 어제와 오늘을 추적하는 문화적 순례의 시작”이라며 원소의 발견과 발견자에 얽힌 뒷이야기 및 의식과 가치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원소를 이용하고 찬미하는 이야기, 그리고 과학은 물론 미신에 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각 원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책은 ‘힘’ ‘불’ ‘기술’ ‘아름다움’ ‘흙’ 등 다섯 가지 큰 주제에 따라 구성했다. ‘인류학자가 작성한 것처럼 보이는 주기율표’를 만들기 위해서다. 책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책에 따르면 로마제국의 청동, 스페인의 황금, 영국의 철과 석탄처럼 제국의 힘은 원소를 소유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현대에 올라와 20세기 초강대국 사이의 균형은 우라늄을 사용하는 핵무기와 우라늄으로 만드는 플루토늄에 의해 유지됐다. 강대국들의 거대한 무기가 돼버린 플루토늄(Pu)의 원소기호가 오줌이나 악취를 뜻하는 비속어 P. U.(peee-euggh)에서 비롯했다는 사실도 재밌다. 플루토늄을 최초로 합성해낸 글렌 시보그는 단지 ‘작은 장난’이었다고 말했다.

1장인 ‘힘’이 황금(Au) 등 돈과 권력을 만드는 원소들의 이야기라면, 2장 ‘불’에서는 타면서 내는 빛이나 부식 작용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원소들에 대해 말한다.

오늘날에도 인체 자연발화에 관한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이 간간이 보도된다. 이 모든 경우에서 가능성 있는 발화원 중 하나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인체가 방출하는 인(P)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인을 최초로 추출한 사람은 연금술사 헤니히 브란트였다. 재미있는 건 인이 소변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브란트는 엉뚱하게도 자신이 찾으려는 황금과 황금빛 액체, 즉 인간의 소변 사이에 성스러운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많은 소변을 모아 증발시키고 잔류물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증류할 때 생긴 증기가 괴기스러운 빛을 발산하며, 증기를 응결시켜 얻은 밀랍 같은 하얀 물질에서도 똑같은 빛이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증류기에서 빠져나와 공기와 접촉하자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그는 이것이 우리 몸속의 어떤 물질에서 기인하는 ‘기적의 빛’이라고 믿었고, 이것이 황금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브란트의 기대는 결국 물거품으로 끝났지만, 최초로 인을 추출해냄으로써 화학사에 족적을 남겼다.

책은 또 많은 원소들의 화합물과 다른 원소들의 빛이 세상을 어떻게 채색하는지 증명하고, 수많은 원소들이 왜 특정한 장소에서 발견되는지도 밝힌다.

역사와 전기, 신화에서부터 경제학, 지질학, 지리학, 천문학, 종교 등까지 각 분야를 넘나들며 원소들에 얽힌 ‘거의 모든 역사와 비밀’을 흥미롭게 파헤쳐 세계사의 이면을 살피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