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 / 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 번역팀 엮음

후설(喉舌·목구멍과 혀)은 조선시대 승정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왕의 명령을 출납하니 왕의 후설이로다”라는 ‘시경’의 한 대목에서 나왔다. 승정원은 오늘날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하는 곳으로 승정원일기는 임금을 수행하면서 보고 들은 말과 행동은 물론 국정의 이모저모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말과 행동, 국정의 이모저모라니 그 양이 어느 정도일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영조·고종대의 화재로 많은 부분이 사라졌지만 복구 과정을 거쳐 지금은 1623년부터 1910년까지 총 288년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분량은 무려 3245책, 2억4300만자로 조선왕조실록의 5배에 이른다. 단일 서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양이다.

이 책은 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 번역팀이 엮은 승정원일기 안내서이다. 이들이 안내서를 출간한 이유는 국보 303호이자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기록유산인 승정원일기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조선시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방대하고 풍부한 기록이지만 번역된 양이 너무 적어 인지도와 활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지금 속도대로 번역할 경우 10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책은 승정원일기에 대한 번역팀의 애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승정원일기에 대한 설명부터 직접 발췌를 통한 맛보기, 승정원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해낸 영조의 하루 등 각 챕터의 구성이 짜임새있고 내용은 쉬우면서도 매우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갖춘 입문서라는 쉽지 않은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승정원일기에 대해 가장 많은 애정을 품고 있을 이들이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승정원일기의 가치를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수고로움에서 나왔으리라 짐작된다.

먼저 이들은 승정원일기의 우수성은 풍부하고 자세한 내용이라고 꼽는다. 날씨, 천문 현상에 대한 매일의 기록, 병을 진단하고 처방한 입진 기록, 제도와 법령을 마련·수정·폐지하기까지의 과정과 관련논의 등 내용이 방대하고 풍부하다. 또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 자리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빠짐없이 기록해 임금이 태어나 생을 마칠 때까지 거치는 통과의례와 궁중 연희 등에 대한 기록은 오늘날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다. 특히 이들은 책을 엮으면서 독자들이 승정원일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한다. 실제로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는 기록이나 그 시절의 사회상을 보여줄 수 있는 기록을 선별해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의 국상 때 염하는 모습, 승지 후보를 결정하는 데 이조판서와 이조낭청이 다투던 일화, 관원의 고과 평정 잘잘못에 대한 조처, 임금의 부름을 47차례나 어긴 이조판서의 사례, 고종의 커피에 몰래 아편을 넣은 사건 등이 소개돼 있다.

이와 함께 왕의 명령이나 신하의 보고 내용이 담긴 문서를 중심으로 문서의 성격과 해당 사례를 소개하고,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되는 영조의 어느 하루도 재구성했다. “승정원일기는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용이다. 잠든 용이 깨어나 창공을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번역이라는 여의주가 필요하다”는 이들은 “이 책 출간이 번역작업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고, 번역이 확대되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