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끈’이었던 주찬권의 아쉬운 영별

지난해 12월 그룹 들국화의 연말 앙코르 공연이 대학로의 작은 무대에서 열렸습니다. 잘 나가던 공연은 그러나 대학로 일대에 전기가 갑자기 끊기면서 중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뮤지션들은 악기를 놓았고, 관객들은 침묵으로 대응했습니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드러머 주찬권이 깨뜨렸습니다.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가 내한 무대에 오른 것처럼, 그는 현란한 테크닉과 들썩거리는 리듬으로 관객의 ‘침묵’을 ‘비명’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분위기가 제법 그럴싸하게 들뜨자, 전인권이 마이크를 다시 잡고, 최성원이 기타를 들었습니다. 예정에도 없던 존 레넌의 ‘이매진’과 이글스의 ‘데스페라도’가 덤으로 주어졌습니다.

주찬권은 그런 뮤지션입니다. 팀에서 큰 목소리를 내며 먼저 나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죽어가는 분위기를 방관하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그만큼의 중용을 지키는 미덕은 그의 타고난 기질이자 장기였습니다.

1985년 들국화 1집에 세션으로 참여해 이듬해 2집부터 정식 멤버로 합류한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차고 넘쳤습니다. 외국 음악이 득실거리던 시절에도 그는 한국 록에 대한 집착과 자부심이 유난히 강했습니다. “신중현 선생님의 첫 음반을 듣고 우리 가락의 힘을 느꼈어요. 그리고 ‘나도 저런 식으로 록음악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제 솔로 음반도 그런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 셈이죠.”

하지만 그의 음악 인생이 마냥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1987년 들국화 해체 이후 그의 음악과 인생은 쉼없이 흔들렸습니다. 해체 이후 내놓은 3장의 솔로 음반은 소리 없이 묻혔고, 1996년엔 14년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습니다. 1997년엔 들국화 멤버 허성욱을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1996년 어느 날, 서울 강남의 한 룸살롱에 가요계 ‘후배’들이 들이닥친 사건은 뮤지션의 ‘명예’가 ‘멍에’가 된 초라한 현실의 기억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손님들의 가무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목격한 후배들은 “형님, 왜 여기서…”라고 했고, 주찬권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왔다”고 해명했습니다. 나중에 이 일을 인터뷰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한 게 아니라, 음악을 하려고 돈을 벌었어요. 그땐 ‘들국화’란 이름이 부담이었죠. 그냥 하루하루 음악만 하고 살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으니까요.”

주찬권은 조만간 발표될 들국화의 새 음반 수록곡의 드럼 녹음을 모두 마치고 지난 20일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들국화가 해체된 이후에도 주찬권은 팬 클럽 회원들과 끊임없이 소통의 다리가 되었고, 지난해 들국화 재결성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중재자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끈이었습니다. “제게 음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모든 것을 얘기하고 같이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직 할 얘기가 많이 남았는데….”(2011년 3월 인터뷰 중에서)

김고금평 기자 dann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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