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7, 8년 전쯤으로 기억됩니다. 가수 신승훈이 기자와 만나 “발라드로 1000만 장 넘게 팔고 대중성도 확보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라며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그때 그에게 이런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뭐가 두려우세요. 발라드 음반에서도 맘보, 댄스, 재즈 기운들을 다 넣었는데. 록만 하시면 되겠네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에 그는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모던 록을 주축으로 한 ‘스리 웨이브스 오브 언익스펙티드 트위스트(3 waves of unexpected twist)’라는 3연작 미니 음반 시리즈를 내놨습니다.

시리즈 1인 ‘라디오 웨이브’는 2008년, 시리즈 2인 ‘러브 어 클락’은 2009년에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처절’과 ‘슬픔’으로 점철된 그의 노래색에 익숙한 대중이 그의 ‘실험’을 썩 달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매 음반마다 100만 장 이상씩 팔아치운 그에겐 이 시도가 ‘위기의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4년 뒤 시리즈의 완결판인 ‘그레이트 웨이브’가 23일 발표될 예정입니다. 15일 서울 강남의 한 바(bar)에서 열린 감상회에선 신곡 5개가 미디어를 대상으로 처음 공개됐습니다. 들어보니, 참 신선했습니다. 오랜 공백 뒤에 나온 음반인 데다, 신승훈이 모든 곡을 직접 써 식상한 패턴으로 흐르거나 과잉의 흔적이 투영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선입견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 참신했던 건 작곡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이었습니다. 어떤 곡에서든 ‘신승훈표 멜로디’가 끼어있을 것 같은 답습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숨겨진 작곡가가 새로 참여한 듯한 인상까지 풍겼을 정도입니다. 특히 타이틀곡 ‘쏘리’에서 보여주는 브리티시 록에 대한 이해도는 시리즈 1과 2의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마이 멜로디’ 같은 곡은 예상하기 힘든 패턴의 멜로디에서도 듣는 이의 가슴을 직격으로 후벼파는 알싸함이 강하게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신승훈은 이날 감상회에서 이런 좋은 곡들을 들려주면서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5곡을 듣는 데 1시간 30분이 소요될 만큼 설명은 꽤 자세하고 길었습니다. 덕분에 심장으로 느끼고 싶었던 감상의 태도가 머리로 이해하는 논리의 태도로 바뀌기 일쑤였습니다. 지나친 설명이 작품에 대한 열린 감상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까요?

그의 친절은 워낙 유명해, 콘서트에서도 팬 서비스 차원에서 3시간을 훌쩍 넘기는 게 다반사입니다. 음악가는 자신의 작품을 내놓으면서 때론 묵언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작품에 대한 감동은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작품에 대한 창작 욕심만큼 과잉 친절에 대한 자제도 필요합니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