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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이화여대 교수·행정학

조선 후기 관직 등용의 부정부패는 18세기 이후 당쟁의 격화로 인한 정치·사회적 혼란과 함께 증폭됐고, 세도정치에 따른 관기(官紀) 문란과 매관매직의 풍조에 편승해 19세기 이후 그 실상이 더 극심했다.

이러한 조선시대 인사제도의 문제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경세유표’와 ‘목민심서’에서 과거제도의 개혁을 통한 유능한 인재의 등용 즉, 공무원 임용시험의 다양화를 강조했다. 물론 다산이 추구한 개혁의 방향이 현재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건 아니지만 개방형 임용제도, 고위공무원단의 도입 등과 같은 공무원 인사 개혁의 단초를 우리는 다산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1급 내지 3급 공무원의 20%를 개방형 직위로 지정해 계약제를 적용하고 있다. 공직(公職)의 침체를 방지하고 전문성 향상과 임무 수행의 질을 높일 목적이었다. 그러나 제도 운영의 실제에 있어 개방형 직위의 범위 설정에 나타난 형식주의와 개방형 직위에 임용 예정 조직의 내부 인사가 다수 임용되는 문제가 줄곧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직 임용 개방성은 0.392로 나타난다. 0에 가까울수록 외부와 단절된 채 내부 조직원들끼리 자리를 나눠 먹는 폐쇄성이 강하다는 의미인데, 한국의 개방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0.478보다 낮았다. 이는 낮은 직급의 공무원은 공개시험을 통해 뽑지만 고위 공직자는 미리 선발된 공무원 인력 가운데서 주로 뽑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 임용 예정자를 정해놓고 민간인을 들러리 세우는 현재의 개방형 임용제도는 우리나라 인사제도와 실제 운영 간 이중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들여와도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이러한 폐쇄적인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하겠다. 폐쇄형 인사는 공직이 침체되고 관료 집단이 외부의 변화와 요청에 민감하지 못한 특권 집단으로 되게 할 우려가 있다.

그러면 이러한 폐쇄적 공직 임용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는 신뢰의 상실을 지적할 수 있다. 계급제 공무원 임용제도를 운영하는 우리나라가 개방형 임용을 가미하게 된 취지는 사회 전반에 걸쳐 직업 유동성이 커지면서 지위 중심에서 업무 중심, 성과 중심, 전문가 중심의 장점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실제 운용에서 도입 취지와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은 제도 도입의 이유를 무시한 처사다.

다음으로, 공무원 집단이 환경적인 요청에 민감하지 못하고 특권 집단화할 우려가 있다. 아직도 공직에 대한 엄청난 지원율은 역으로 말해 지대(rent)가 매우 크다는 것의 반증(反證)이라고 할 수 있다. 모집단위 중 가장 많은 856명을 뽑는 최근 서울시 일반행정 9급 시험에는 8만2534명이 지원해 96.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또한 일반행정 7급은 23명 모집에 9723명이 신청, 422.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지방세 9급은 56명 모집에 7207명이 지원해 131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국가의 소득 수준과 부패 수준 간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부패의 정도는 낮게 나타난다. 재미있는 것은 공직의 자격 기준에 엄격히 계량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나라들 즉, 포르투갈·그리스·터키 등은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고 부패 수준이 매우 높은 국가들인 반면, 정성적인 기준을 사용하는 뉴질랜드·스웨덴·덴마크 등은 소득 수준이 매우 높고 부패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제도와 운용의 괴리 즉, 신뢰 수준이 이러한 결과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우리는 언제나 민간직위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공직을 갖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