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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넓다 / 유승훈 지음 / 글항아리

부산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 등을 폭넓게 다룬 인문지리서. 학술적인 접근의 지역 연구서는 종종 나왔지만 집중적으로 한 지역의 삶과 문화를, 그것도 근현대의 풍경을 다룬 대중서는 오랜만이다. 학예연구사이자 역사민속학자인 저자는 부산에서 살고 있지만 뜻밖에도 ‘부산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외지인의 눈으로 오히려 부산을 더 샅샅이 훑고 있다. 감상이나 추억을 덧칠하는 대신 경험과 자료, 그리고 객관적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는 부산의 근현대사 쪽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는데, 부산사람들의 삶을 미시적으로 접근해서 이야기를 끌어낸다. 부산을 다루면서 항구로써의 부산의 역사, 피란과 실향의 도시, 부산문화의 탄생 등 3단락으로 나누어 풀어가는데, 각각 단락의 제목에다 대중가요의 제목을 붙였다. 이를테면 부산항과 부산다움을 말하면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끼워 넣고, 6·25전쟁 당시의 임시수도 시절을 말하면서 ‘굳세어라 금순아’를, 노래방 등 부산문화에 대해 다루면서 강산에의 ‘∼라구요’란 노래를 앞세웠다. 사람들이 가요를 통해 삶의 희망을 찾는다면, 그것이 인문학으로 통하는 길이고, 인문학을 읽고 대중의 행복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요로 통하는 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다양한 사건들을 소개해가면서 저자가 풀어놓는 부산 얘기는 흥미진진하다. 이를테면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노랫말에 등장하는 ‘그리운 내 형제’를 말하면서 1966년 남태평양으로 떠났다가 풍랑을 만나 21명의 선원들이 사망한 원양어선 제2지남호 침몰사건과 1962년 브라질 상파울루로 떠난 해방 이후 첫 이민단을 태운 ‘치칠란카호’의 출항, 부산항에서 있었던 파월장병의 환송식 등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식이다.

부지런한 답사와 꼼꼼한 기록 발굴을 바탕으로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다채롭다. 부산 지역에 전해지는 속설의 기원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6·25전쟁 당시 일상의 풍경을 통해 당시 부산의 풍속과 문화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피란 당시 기록화면 속의 생존인물을 찾아 나서거나 사회상을 보여주는 사건 등을 살피고 산동네를 뒤져 남아 있는 공동화장실과 축대에 박혀 있는 비석을 찾아내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부산의 역사와 문화 혹은 부산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애정은 이미 공부나 연구의 차원이 아닌 일상과 삶 속으로 스며든 듯하다. 지역사를 다루되 이론이나 학술적인 방식의 접근이 아니라 실생활과 경험을 토대로 미시적으로 출발하니 쉽게 읽히고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더구나 저자의 미시적 접근이 풍부한 배경지식과 사유의 확장을 통해 지역 문화에 대한 풍성하고 입체적인 고찰로 이어져 부산의 모습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군대 시절 휴가를 나왔다가 노래방에서 들었던 후배의 ‘∼라구요’란 노래를 떠올린 저자. 이 노래에 등장하는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란 가사의 원곡인 ‘굳세어라 금순아’를 통해 당시의 시대정서를 들여다보곤 우리 대중문화 왜색문제와 함께 노래방의 원조인 일본 ‘가라오케’의 부산 상륙 최초 기록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국내 최초의 노래방기계는 1991년 4월 부산 동아대 앞 오락실에서 등장했다. 오락실에 설치된 것은 동전을 넣어 노래를 부르는 오락기계를 이용한 노래반주기였는데, 이 기계는 컴퓨터반주기에다 부산 로얄전자가 자막기술을 결합해 만든 것이었단다. 그리고 한 달 뒤에 부산 광안리의 업소가 이 기계를 방마다 설치하고 ‘노래연습장’이란 간판을 달고 영업을 시작했다.

책에는 흥미로운 미시사(微視史)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6·25전쟁 직후 임시수도였던 부산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던 다방의 풍속도가 그렇고, 부산에 밀면이 등장하게 된 흥미진진한 내력도 그렇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일본인들이 ‘동래온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사족 하나. 부산에 10년째 살면서 곳곳을 두루 훑은 저자가 ‘부산에서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하는 곳’이라고 추천하는 곳은 해운대도, 광안리도 아닌 두호마을의 제당인 ‘국수당’이다. 일광해수욕장을 찾아갔다 길을 잘못 들어서 우연히 찾아간 곳이라는데, 거기서 펼쳐지는 두호마을 일대의 풍경과 거대한 해송들에 포위된 제당의 모습이 더없이 빼어나단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