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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서울대 교수·경영학

국내외 경제 여건이 어려운 속에서 삼성전자가 지난 3분기에만 10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렸다. 이는 삼성전자로서도 매우 의미 있는 성과지만, 세계 경제에서 한국 기업 전체의 위상을 높이는 데 매우 중대한 기여를 했다.

삼성전자의 이러한 쾌거는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동력들 가운데 하나는 삼성전자가 2000년 이후 지금까지 매년 10조 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금액을 연구·개발(R&D)에 과감하게 투자했기 때문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위험을 수반하는 투자에 대해 책임 있는 의사결정(意思決定)을 하는 것이다. 위험을 동반하는 의사결정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주식시장에서 1억 원 이상을 단일 종목에 투자해야 하는 일을 한번 상상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과감한 R&D 투자 이면에는 누군가가 매우 힘들고 어려운 투자 의사결정에 대해 최종 책임을 지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표면적으로 보면 이렇게 중대한 결정들은 대부분의 경우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책임이다. 하지만 한국적 정서를 감안하면 10조 원이 넘는 대규모 미래 투자를 전문경영인 단독으로 추진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비록 평소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 회장은 1987년 45세의 나이로 회장에 취임해 삼성그룹의 연계매출을 1987년 9조9000억 원에서 2012년 300조 원 이상으로 최소 30배 이상 신장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삼성그룹의 주식 시가총액은 1987년 1조 원에서 2012년 기준 300조 원 이상으로 놀라울 정도로 신장시켰다. 그러고도 매년 10조 원 정도의 투자 위험을 감내하고 중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이런 경영자에게 우리는 어느 정도의 연봉을 줘야 할 것인가?

참고로 스티브 잡스 사후에 애플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팀 쿡의 경우에는 2011년 한 해 동안에만 연봉 및 성과급을 포함해 약 4000억 원 이상의 보수를 받았다. 더욱이 2011년 애플의 매출액은 삼성전자보다 훨씬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보수다. 만약 애플처럼 경영자의 연봉을 책정한다면, 이 회장의 연봉은 쉽게 수 조 원을 초과할 것이다.

필자가 경영자의 적정 연봉을 화두로 삼은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CJ에 이어서 효성그룹에 대한 세무조사가 진행됐고, 조석래 회장을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우리 사회에서 경영자의 법적 책임에 대해서는 매우 빠르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경영자의 기여도 및 그들의 현재 연봉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물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우처럼 경영자의 의도적인 사익(私益) 추구 및 법률 위반을 엄중히 처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경영자들의 고의적 불법(不法) 행위 때문에 일반 주주 및 제3자가 피해를 겪는 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 경제의 과거 실상이 법률적 이상주의와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과거 한국 경영자들은 배임·횡령 및 탈세에 대해서 거의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진행되는 법률 적용 사안들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쉽게도 대다수가 과거의 일들이다.

한국이 선진국 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법률적 책임에 대해 과거와 미래를 분리하는 발상 전환이 매우 필요하다. 경영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 및 처벌 기준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해당 기준을 적용하는 미래 시점을 정부가 사전에 공지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격하게 다른 처벌 기준은 과거가 아닌 미래 발생 시점부터 적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검찰에 소환되는 경영자들을 우리는 아무런 대책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