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멜트다운 / 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 양철북

“멜트다운된 것은 원전의 노심만이 아니었다. 원인제공 기업인 도쿄(東京)전력의 경영진들, 책임 관청인 경제산업성 관료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보안원의 원전전문가들, 도쿄전력에 2조 엔이나 대출해 주고도 도쿄전력의 경영이 위험해지자 자신들의 채권 보전에만 필사적이었던 어리석은 은행가들, 미증유의 국난 속에서 정쟁으로 시간을 보낸 정치가들, 그들 모두가 멜트다운되었다.”

아사히(朝日)신문 경제부 기자 오시카 야스아키(大鹿靖明)는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직후, 사고와 사후처리 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이 르포 보고서를 쓰게 된 출발점을 ‘총체적인 멜트다운’이라고 밝혔다. 원전이 연달아 폭발하는 데도 무엇 하나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현실과 운영사인 도쿄전력, 원자력안전보안원과 정부가 모두 책임을 전가하는 현실에 경악한 그는 엘리트나 중역, 선량이라 불린 사람들의 능력 결여와 보신, 책임전가 그리고 정신의 황폐를 가능한 모두 기록하기로 한다. 그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부터 그해 말까지 9개월여간 원전 사고 핵심 관련자 125명을 만나 인터뷰했고, 이를 종합 정리해 원전사고와 사후처리 과정을 눈앞에서 보듯이 생생하게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이 책은 2010년 제34회 고단샤(講談社) 논픽션상을 받았다.

책의 주인공은 네 그룹이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 사고가 나기 약 2년 전 정권 교체에 성공한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최고 권력의 관료집단인 경제산업성, 그리고 사고에도 불구하고 도쿄전력은 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 2조 엔이라는 천문학적 액수를 도쿄전력에 대출해준 은행단이다. 저자는 이들이 벌이는 무능력과 철저한 계산을 해부한다. 도쿄전력은 사건을 최대한 축소해 배상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려 하고, 정치가는 국민들에게 최대한 잘 대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책임을 도쿄전력에 물으려 한다. 관료들은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전력 회사들이 망하지 않게 배상 책임을 정부 측에 적절히 안기려 하고, 은행단은 도쿄전력에 대출해준 돈을 돌려받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실제로 도쿄전력은 높이 10m 이상의 쓰나미(지진해일)가 강타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무시했고, 원전에 균열이 갔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자료를 조작했으며 사고 발생 직후 총리 관저와 사고 현장 사이에 통화 내용을 도청해 정보를 교란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노심이 녹아내려 방사능 유출로 이어지는 심각한 사고를 뜻하는 멜트다운이 쓰나미 강타 직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도 숨겼다.

또 가쓰마타 쓰네히사(勝？N恒久) 도쿄전력 회장은 자신이 가해 기업의 최고책임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들이 거대한 천재지변의 피해자라는 관점은 도쿄전력과 국민들 사이에 메우기 어려운 인식차를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그해 5월 간 총리는 에너지 기본계획 백지화를 선언했다. 에너지 기본계획의 골자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원전 비율을 당시 26%에서 2030년 52%까지 높인다는 것이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간 총리는 한때 원전 수출의 기수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생각으로 돌아와 ‘탈원전’을 선언한 것이다. 이에 경제산업성은 간 총리의 탈원전 노선을 경계하며 원전 유지 노선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됐다. 결국 그해 8월 간 총리 내각은 총사퇴한다. 리더십 부재와 지지율 하락에 따른 결과지만, 경제산업성과 전력업계가 만든 질서가 완강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결국 이 같은 총체적 멜트다운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라고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해관계자로 초청받지 못했다. 하지만 돈줄은 국채라는 국민의 지갑이었다. 그 계산서를 받아든 사람들은 원전 방사능 오염에 노출된 사람이었다. 특히 미래를 담당할 차세대 젊은이와 어린이들이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