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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헤드 / 켄 제닝스 지음, 류한원 옮김 / 글항아리

미국 유명 퀴즈쇼 ‘제퍼디!(Jeopardy)’의 최장기간 우승 기록 보유자 켄 제닝스. 그에겐 별난 취미가 있다. 연속 74회 우승에 빛나는 이 ‘잡학의 대가’는 지도광이다. 미국은 물론 호주의 주도까지 다 알고 있고, 호텔 방에 비치된 허술한 도시 지도와 여행 안내지까지 고이 간직한다.

지식 습득을 위해 지도를 모으기 시작했는지, 다양한 지도를 들여다보다 지식왕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6개월간 오로지 퀴즈만 풀어 250만 달러(약 26억9000만 원)를 벌어들인 ‘지식광’에게 ‘맵헤드(maphead·지도광을 뜻하는 지은이의 조어)’는 제법 잘 어울리는 제2의 별명임에는 틀림없다.

‘제퍼디’ 돌풍 이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한 제닝스가 곳곳에 숨은 맵헤드들을 찾아나섰다. 지도가 인쇄된 넥타이만 수백 개 모은 수집광, 지도 속에 상상의 나라를 세우는 판타지 작가, 분쟁 지역도 마다 않는 여행자, 세상의 모든 길을 꿰고 있는 도로광,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해 보물 찾기를 즐기는 사람 등 지도 마니아들의 별난 이야기를 제닝스 자신의 체험과 버무려 재치있게 그려낸다. 지은이는 “수많은 맵헤드에게 지도의 세세한 부분은 단지 수단이 아니라 목표”라며 “지도에는 분명 선천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지도광들의 유별난 지도사랑(제닝스는 이를 ‘카르토필리아(cartophilia)’라고 표현한다) 행각을 좇으며, 왜 그토록 지도에 집착하는지 그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부인과 전문의 출신 레너드 로스먼은 ‘성지 지도’만 900여 장을 모았는데, 가장 아끼는 지도 220점은 특별히 주문 제작해 짜넣은 미닫이 벽장 속에 보관한다. 대부분은 지도가 인쇄된 넥타이로, 로스먼은 가는 곳마다 그 지역 지도가 인쇄된 넥타이를 기념품으로 산다.

지리적인 대상에 끌리는 성향도 존재한다. 지도를 본 후, 직접 움직여 ‘장소’를 수집하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각 주에서 가장 높은 지점만 찾아다니는 ‘하이포인터스클럽’, 북아메리카에 있는 스타벅스 8500여 곳을 대부분 찾아가 본 윈터나 1만2000곳의 맥도날드에서 음식을 먹어 본 피터 홀든 등이다.

그런가 하면, 지도에 표시된 온갖 길과 표지판에 애착을 가진 ‘도로광(road geek)’도 있다. 이들은 제조회사가 다른 가로등을 구분하고, 고속도로 표지판의 서체가 바뀐 것도 금세 알아차린다. 판타지 작가도 꽤나 극성맞은 지도광이다. 그들은 허구의 장소를 지도로 그리는 행위가 이야기를 완성하는 훌륭한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기상천외한 맵헤드들 행각(?)의 동력을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말로 대신한다. 즉 지구에 대한 본능적인 열정이자 장소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 그 때문일까. 제닝스 역시 각양각색의 지도 마니아들을 만나면서 시종일관 지도와 인간, 삶과의 관계를 성찰한다. 이 같은 세심한 관찰과 시선은 한반도 지도 위에도 잠시 머문다.

“밤이 되면 남한의 도시들은 밝게 불을 밝히는 반면 고립된 농업 국가인 북한은 느닷없는 암흑에 잠겨서 시베리아나 사하라 사막에 펼쳐진 최고로 외진 지역들만큼이나 텅 비어버린다. (중략) 밤이 되면 남한은 반도가 아니다. 섬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