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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 / 스티븐 호킹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병을 진단받기 전에 나의 삶은 몹시 지루했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처형을 앞둔 죄수가 된 꿈을 꾸었다. 불현듯 사형 집행이 연기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번 반복해 꾼 또 다른 꿈은 내 목숨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좋은 일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영국의 우주물리학자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과학자인 스티븐 호킹(71)은 스물한 살,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써내려갔다. 바닥을 드러낸 뒤에야 소중함을 알고, 끝이 보이는 곳에서야 간절해지는 어리석은 인간의 아이러니를 이 천재 과학자도 피하지 못했다. 책은 루게릭병으로 전신이 마비된 호킹이 1분에 세 단어를 말하고 쓸 수 있는 음성확성기를 통해 써내려간 그의 첫 자서전이다. 육체적 한계 때문에 빅뱅연구, 블랙홀,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 같은 두툼한 전문서 몇 권으로도 모자랄 것 같은 복잡한 과학적 성과와 다르게 자서전의 문장은 단순하고 분량도 얇다. 최고 우주과학자가 써낸 매우 단순하고 간단하고 솔직한 글. 이 양측의 멀고 먼 거리가 읽는 이에게 감동을 안긴다.

그는 시간 순서대로 자신의 삶과 과학적 연구 성과를 정리해 나간다. 갈릴레오가 죽은 지 꼭 300년 후인 1942년 1월 태어나 생물학보다 물리와 수학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 열일곱 살에 들어간 옥스퍼드대학 생활, 그리고 스물한 살에 받은 루게릭병 진단. 그 뒤 호킹은 보통사람이라면 병행하기 어려운 두 가지 길을 조화시켜 나간다. 하나는 병이 깊어지고 장애가 심해지면서 겪는 인간적 고통이며, 다른 하나는 그럴수록 뜨거워지는 연구에 대한 열정이다. 2009년 9월 정년 퇴직할 때까지 30년 동안 케임브리지대 루카스 수학교수를 역임한 그는 중력, 블랙홀, 특이점 분야의 연구와 자신의 최고 업적인 ‘호킹 복사’ 예측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설명해 준다. 자세하게 풀이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이 역시 간단하게 정리돼 있는데 과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대중들에게는 그리 쉽지 않다. 오히려 일반 독자들에겐 구체적인 연구 내용보다 이를 이뤄 가는 인간적 과정에 더 눈길이 갈 것이다. 그는 장애로 인한 두 번의 이혼, 기관절개 수술, 여러 차례 목숨을 잃을 뻔했던 기억 등 고통스러운 일들도 담담하게 들려준다. 루게릭병 진단 직후에 만나 삶에 희망을 준 제인과의 결혼, 셋째 아이가 태어나자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신과 아이들을 부양해 줄 사람을 원했던 제인이 동네 교회 오르간 연주자 조너선에게 아파트의 방 하나를 내준 일, 제인과 조너선이 가까워지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 간호사 일레인과 함께 아파트를 나온 일, 일레인과의 재혼과 이혼도 써내려간다.

그는 교양과학서 ‘시간의 역사’ 출간 과정을 통해 과학적 성과가 아니라 루게릭병을 앓는 장애 과학자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 과학자가 됐다는 점도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들려준다. 그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자신이 느낀 대로 설명한 ‘시간의 역사’(1988) 출간 당시, 밴텀출판사가 책표지에 자신의 사진을 싣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장애 과학자’를 내세운 출판사의 꼼수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호킹의 이 자서전이 주는 대중적 온기 역시 위대한 과학적 성과보다는 삶을 대하는 낙관적인 태도, 거리를 두고 자신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스물한 살, 루게릭 병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몹시 부당하다고 느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당시 나는 내 삶이 끝났고 나의 잠재력은 결코 발휘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삶에 대해 평온하게 만족한다. 나는 두 번 결혼했고,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성장한 자식 셋을 두었다. 과학자 경력은 성공이다. 나의 장애는 과학 연구에서 심각한 걸림돌이 아니었다. 나는 알차고 흡족한 삶을 살았다.”

그는 이렇게 자서전을 마무리한다. “나는 일본을 여섯 번, 중국을 세 번 방문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 가보았다. 잠수함을 타고 바닷속에 들어갔고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 오르기도 했고, 무중력 비행도 해보았다. 우주 여행을 할 계획도 잡혀 있다. 나의 초기 연구는 고전 일반상대성 이론이 빅뱅과 블랙홀의 특이점에 깨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더 나중에 나는 시간의 시작과 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양자이론으로 예측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론물리학을 연구하며 살아온 세월이 영광스럽다.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면 나는 행복하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