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이 붓 가리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상급 프로골퍼들은 골프채를 가릴까요?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상금 여왕’ 김하늘이 올해 초반 드라이버 샷 난조로 죽을 쑤다 2주 전 MBN김영주골프여자오픈에서 우승컵을 안았습니다. 그것도 KLPGA 30년 사상 최저타를 기록했습니다. 사실 김하늘은 올해 드라이버를 새로 교체해 들고 나왔습니다. 지난해 가을 혼마로 바꾸면서 상금랭킹 1위를 차지했기에 올시즌을 대비해 거리를 좀더 늘릴 욕심에 똑같은 혼마 채를 약간 가벼운 스펙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드라이버 샷만 치면 좌우로 종잡을 수 없이 날아다니는 통에 지난 4월 이후 컷탈락 세 차례, 기권을 두 차례 했습니다. 문제는 연습라운드나 프로암대회 때는 똑바로 나가던 드라이버 샷이 대회가 시작되면 멋대로 날아가 원인 찾기에 골몰해왔습니다.

5개월 동안 헤매다 종전에 쓰던 드라이버 스펙과 똑같이 바꿨습니다. 그리고 US여자오픈에 출전해 자신감을 얻었고, 한 달 만에 우승컵을 안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혼마의 ‘클럽 장인’들은 김하늘이 쓰던 드라이버와 똑같은 스펙으로 10자루를 맞춰 선수가 마음에 드는 4∼5자루를 갖고 연습하도록 했습니다. 어쨌거나 선수가 골프채 탓을 하면 팬들은 으레 그런가 보다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지난해 세계남자골프랭킹 1위에 올랐던 로리 매킬로이는 어렸을 때부터 써 왔던 타이틀리스트를 버리고, 나이키와 계약하면서 골프채도 바꿨습니다. 매킬로이는 우승 한 번 못하고 시즌을 접어야 할 처지입니다. 한국의 ‘영건’ 노승열 역시 골프 시작 때부터 써오던 타이틀리스트 대신 나이키를 들고 올시즌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뛰었지만 내년 시즌 1부투어를 장담키 어렵게 됐습니다. PRGR 클럽을 사용하던 신지애는 몇해 전 미즈노 클럽으로 바꿔 성적은커녕 부상마저 겹쳐 한동안 낭패를 봤습니다. 이들은 우승을 안겼던 골프채를 바꾸자마자 부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인가요?

사실 프로들은 골프채에 민감합니다. 아마추어와는 다른 ‘촉(觸)’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프로는 같은 골프채 10개를 눈 감고도 자신에 맞는 것을 찾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골프는 골프채만 맞다고 우승할 수는 없습니다. 프로선수들은 경기가 뜻대로 안풀리면 이유를 찾습니다. 아마추어들이 대는 핑계와 같습니다. 먼저 가족이나 몸 컨디션을 찾고 연습 방법도 되돌아봅니다. 그래도 답이 안 나오면 대개 골프채를 지목합니다. 이쯤되면 골프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되고 선수 자신도 샷에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십중팔구는 심리적인 요인입니다. 그래서 골프를 ‘멘털 게임’이라고 하나 봅니다. 이번 주말 라운드 나가기 전 골프채를 꺼내 묵은 때를 닦으며 잘 맞은 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자신감을 갖고 필드로 나가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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