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미국 워싱턴DC의 화제의 책은 단연 ‘디스 타운(This Town)’이었다. 8월에 워싱턴포스트의 정치·사회과학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의회와 백악관 주변을 오가는 지식인들의 휴가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뉴욕타임스매거진 기자인 저자 마크 레이보비치는 신랄한 필치로 로비로 얼룩진 워싱턴 정치의 현실을 고발한다.

1950년대 5000여 명이었던 미국의 등록 로비스트는 현재 1만2000여 명. 로비스트들은 정치인들과 오찬, 만찬을 즐기면서 온갖 규제와 법규를 만들어낸다. 금융개혁법인 도드 프랭크 법의 경우 무려 849페이지,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부칙도 달려 있다. 각종 조항이 구석구석 숨어 있어 법률 전문가들도 제대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다. 로비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는 인맥 네트워크와 돈 그리고 법규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규제가 적용되고,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거창하게 워싱턴 정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근 워싱턴DC 일대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교포들은 규제의 직격탄을 맞았다. 페어팩스 카운티의 공공안전환경 부서에서 검열을 나와 불판에 사용금지 딱지를 붙였다. 미국 보험협회 안전시험소의 UL 인증이 없다는 이유였다. 휴대용 부탄가스 버너 사용도 전면 금지됐다. 페어팩스 카운티는 UL 인증 불판으로 바꾸면 간단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불판 한 개 교체에 도면설계, 테이블과 UL 인증 제품 구입, 안전검사까지 개당 3000∼4000달러가 들어간다. 불판 20개를 설치하려면 6만∼8만 달러가 필요하다. 설치비용이 500∼1000달러인 전기시험연구소 공인 ETL 인증도 있지만 카운티에서는 UL 인증을 선호하고 있다. 1993년 개업한 불고기전문점 한성옥은 지난 26일 아예 폐업을 했다.

급기야 워싱턴DC 총영사관이 진상 파악에 나섰다. 하지만 ‘공공안전’을 내세운 규제에 합리적 논거를 제기하기가 쉽지는 않다. 한성옥 이나선(62) 사장에게 카운티 당국이 갑자기 규제에 나선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는 “글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알 길이 있나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라고 말했다. 규제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될 경우 한식의 세계화를 선도했던 불고기 메뉴는 미국의 웬만한 한식당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신선로도 마찬가지다. 테이블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음식을 끓여가면서 나눠 먹던 한식당의 정겨운 모습도 미국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