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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파도 / 소날리 데라냐갈라 지음, 김소연 옮김 / 나무의 철학

2004년 12월 26일, 영국 런던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두 아들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평온하고 살아가던 소날리 데라냐갈라의 안온한 삶은 한순간에 바스러져 버렸다. 스리랑카 남동부 얄라 국립공원 호텔에서 가족과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던 그녀는 해안을 덮친 9m가 넘는 거대한 지진해일(쓰나미)에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하는 남편, 두 아들, 부모님 그리고 그녀가 살아갈 희망과 꿈까지. 올해 뉴욕타임스 최고의 논픽션으로 선정된 책은 거대한 재난 속에 혼자 살아남은 사람이 써내려간 고통의 연대기이다.

사고 직후 그녀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이제 그들은 죽었고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진실을 되새겨야 했다. 이 같은 사실은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과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허무함과 비통함으로 이어졌다. “나는 왜 살았을까. 왜 나는 가족들을 구할 수 없었을까, 난 가족 없이 살 수 없어”라며 그는 버터 나이프로 허벅지를 찌르고 담뱃불로 몸을 짓이기며 “제발 하루빨리 그들 곁으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다. 그녀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가족들과 함께한 것들이었고, 세상의 이 모든 것들은 가족들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져 그를 까무러치게 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하루 종일 어둠 속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낸다.

그녀가 가족과 함께 살던 런던 집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낸 것은 사고가 난 뒤 4년이 지난 뒤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남편이 카레를 만들던 냄비에 붙어 있는 양파껍질, 방금 벗어놓은 것처럼 마른 흙이 묻은 아이들의 신발, 거실 벽에 빨간색 펜으로 아이들 키를 표시한 눈금들을 본다. 평온하고 행복했던 삶의 모습들은 그녀를 또다시 고통으로 밀어넣었지만 그녀는 이처럼 엉망진창인 자신의 모습에 가족들이 얼마나 실망할지도 느낀다. 책은 이렇게 상실의 고통뿐 아니라 고통과 함께 살아가고 견뎌야 했던 시간들도 써내려간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 앞에 펼쳐진 삶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고통 끝에 그녀는 아이들이 좋아했던 음식, 남편이 즐겨 듣던 노래가 다시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삶의 한 조각으로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기억들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제 나는 한결 차분하게 우리 모습을 바라볼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작은 업적이 더없이 반갑다. 7년이라는 세월만큼 그들의 부재는 팽창되었다. 우리가 함께 올 수 있었던 삶만큼 그들의 부재도 부풀어 올랐다. 결국 이것이 내가 새로 겪어야 할 슬픔인줄 잘 안다. 지난 7년 동안 내 상실감은 증류 과정을 겪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고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두렵다. 이 현실이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섭고 버거우면 어떡하나? 그 현실을 가까이에 뒀다가 내가 허물어지면 어떡하나?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경험을 통해 그들과 가까이 있을 때만이 내가 회복될 수 있음을 안다. 그들을 멀리하고 그들의 부재를 부정한 나는 균열된 뼈에 불과하다. 지금 나는 그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책 발간으로 용기를 얻은 그녀는 현재 컬럼비아대에서 재난 복구를 포함한 경제 발전 분야의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