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골프 발상지’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의 올드코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2013년 브리티시여자오픈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박인비의 ‘그랜드슬램’을 지켜볼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기자는 2001년 이 대회가 처음 메이저대회로 승격될 당시 취재를 갔었고, 박세리가 초대 챔프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12년 만에 다시 찾아간 대회에서 뭔가 ‘허전함(?)’이 다가왔습니다. 친숙했던 ‘골프 대디(daddy)’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골프아빠는 그동안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의 든든한 디딤목이었습니다. 딸의 캐디로, 코치로, 매니저로, 운전기사로, 요리사로 1인5역을 해오던 골프아빠들이 자취를 감춘 것입니다.

아직 두세 명의 아빠가 딸의 뒷바라지를 하고는 있지만 많을 땐 10명이 넘었던 전성기와는 비교가 안됩니다. 매주 대회장에서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 아빠’라고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였습니다. 딸 하나만 믿고 온가족이 ‘올인’을 한 케이스도 많았습니다. 아빠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한국 소식이나 다음 대회 스케줄을 상의하며 세대차 나는 딸들을 대신해 서로 의지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딸사랑이 지나쳐 아빠들끼리 얼굴을 붉히거나 다툼을 하는 통에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골프아빠들의 이런 헌신 덕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선수들도 속속 탄생했습니다. 박세리의 성공을 바라보며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는 말을 절감한 때도 있었고, 너도나도 ‘제2의 박세리’를 만들겠다며 딸을 필드로 데려갔습니다. 골프아빠들의 이런 열정은 이젠 훗날 나올 ‘한국 LPGA도전사(史)’에서나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골프아빠들이 사라진 이유가 궁금해 선수들에게 물었습니다. 이젠 나이를 먹고 병도 들어 딸에게 짐만 된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와 TV나 전화로만 딸을 만납니다. 또 대회장 가는 길도 익숙해졌고, 언어 소통 문제도 해결되니 한때 ‘내 딸은 내가 제일 잘 안다’며 캐디나 코치를 겸업하던 시대도 옛 얘기가 됐습니다. 이젠 직업캐디와 전문코치를 고용하면서 더 좋은 성적을 냅니다. ‘매니저’ 일도 분업화돼 여러 선수가 항공이나 렌터카 등 스케줄 관리를 하는 전문회사도 생겨났습니다. 무엇보다 LPGA의 인기에 힘입어 든든한 스폰서가 생겨 연간 수억 원씩 후원을 받으며 돈 걱정 없이 선수생활을 하게 된 것이 골프아빠의 설 땅이 사라진 이유가 된 것입니다.

한국여자골프가 세계랭킹 1위를 배출하고 LPGA투어에서 100승 이상을 합작할 수 있었던 뿌리는 뭐니뭐니 해도 골프아빠의 한없는 희생 덕분입니다. 이번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한국 선수들이 우승 일보 직전 막판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언뜻, 서슬퍼런 모습으로 딸을 향해 호통치는 골프아빠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벌써부터 골프아빠가 그리워지려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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