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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 미하일 고르바초프 지음, 이기동 옮김 / 프리뷰

구소련의 마지막 당서기장으로, 구소련의 최초 대통령이자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자서전이다. 그는 서문에 책의 성격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붙여놨다. “이 책에 회고록 성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회고록은 아니다. 이것은 아내와 내가 함께 한 삶에 대해 쓴 나의 이야기이다. 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아내 라이사와 함께 한 추억에 이 책을 바친다.”

20세기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가 ‘정치적 길’보다는 모스크바대 재학 당시 첫눈에 반한 부인 라이사와의 사랑과 결혼까지 포함해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솔직하게 담아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는 ‘필부’가 아니었고, 그의 개인적 삶은 곧 공적 역사였다는 점에서 이 책은 20세기 구소련의 정치사, 그것도 권력의 꼭대기에 있었던 그만이 볼 수 있는 내밀한 정치사이다. 특히 구소련 붕괴 전후의 구소련 정치권 내의 극적인 상황과 연방 해체과정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고르바초프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서방을 중심으로는 한쪽에서, 그는 평화·군축 외교를 견지하며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독일 통일과 동유럽 민주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정교하게 준비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다 사회주의 종주국 구소련의 해체를 초래한 장본인이자, 동구권을 고스란히 서방에 넘겨준 배신자 혹은 매국노로 비판받기도 한다.

어떤 평가이든 그의 개혁은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오히려 사회 혼란과 국민 불만을 부추겨 결국 구소련 해체를 초래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상당히 낙관적 온건파로 급진파에 압도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개혁의 실패는 고르바초프 개인의 탓이 아니라 구소련이 1980년대 들어 이미 생기를 잃어버렸다는 역사적 사실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는 당서기장에 취임하자마자 구소련의 당면 위기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위기 대응에 나섰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그의 낙관적 의도와 달리 페레스트로이카에 저항하는 세력의 방해공작, 보수파와 급진파의 협공, 정치국 동료들 간의 알력이 벌어졌고, 결국 1991년 쿠데타까지 발생하는 파국에 이르게 된다. 또 브레즈네프 사망 직전부터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사임할 때까지 철의 장막 뒤에서 벌어진 권력투쟁 이면사도 생생하게 담겨 있고, 지도자들의 부침과 대권을 둘러싼 세력 간 합종연횡, 음모와 배신 등도 풀려 나온다. 물론 1931년 스타브로폴 지방에서 태어나 트랙터 조수로 일하다 모스크바대 법대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라이사를 만나는 사랑이야기,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면서 느끼는 깊은 슬픔 같은 그의 개인사도 세세하게 정리돼 있다.

이 같은 그의 사적·공적인 삶을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 일개 지방 지도자에 불과했던 그가 빠른 시간 내에 서열과 출신성분이 엄격한 구소련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지성, 낙관주의, 활력, 달변, 정치적 민첩성과 수완, 당대 실세와의 연줄 쌓기까지. 자신이 추진한 개혁이 실패하면서 상처를 입었지만 고르바초프는 역사가 그에게 맡긴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