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람을 위한 경제학 /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이 책은 경제 사상의 역사라기보다 경제학이 사람들의 삶을 바꿀 도구라는 생각을 이야기로 푼 것이다. 이 생각은 1차대전 이전의 황금기에 탄생하여, 파국으로 치달았던 시기에 두 차례 세계대전과 여러 전제주의 정부와 대공황에 의해 도전받았으며, 2차대전 이후 두 번째 황금기에 부활했다.”

이 책의 성격을 웅변하는 저자의 말이다. 현재 컬럼비아대 교수로 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일생을 다룬 전기 ‘뷰티풀 마인드’로 널리 이름을 알린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이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진화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 경제적 필연을 뒤엎을 수 있다는 생각, 인간이 물질적 환경의 노예가 아니라 물질적 환경의 주인일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당시 ‘평균 영국인’은 농장일꾼이었다. 이들의 생활수준은 로마시대 노예보다 나을 게 없었다. 농장일꾼이 사는 오두막집은 처자식과 가축들이 밤낮으로 함께 사용하는 어두운 방 한 칸이 전부였고,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여흥은 섹스와 밀렵뿐이었다. 자신의 형편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가당치도 않았다. 비관과 체념이 대세였던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세상은 바뀌었다. 비참한 생활 조건이 개선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도구로 운명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됐다. 급변한 이런 상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학문 분야가 바로 경제학. 저자는 “1870년대 이전 경제학이 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없느냐에 대한 학문이었다면, 1870년 이후 경제학은 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인물 중심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생산량 증대가 인구 증가를 빠른 속도로 추월하기 시작한 19세기 경제사상부터 더듬어나간다.

저자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경제학을 주인 되는 도구로 바꾸는 데 기여한 인물’들. 엥겔스와 마르크스, 앨프리드 마셜 등 전설적인 경제학자부터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이겨내는 데 기여한 슘페터, 하이에크, 케인스 등의 삶을 풍부한 일화와 함께 흥미롭게 조명한다. 책에 따르면 늘 마감을 어겨 ‘수호천사’ 엥겔스를 초조하게 한 마르크스는 어떻게 경쟁이 같은 자원으로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또 수줍음 많고 자수성가한 케임브리지대의 수학자 마셜은 빈곤으로부터 탈피하는 과정이 점진적인 것이며, 공장과 사무실에서뿐 아니라 학교 교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과정임을 보여줬다.

20세기 후반에는 뉴딜 정책 지지자로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일을 담당한 밀턴 프리드먼, 경제 예측은 틀렸지만 경제학 교과서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폴 새뮤얼슨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작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우아한 문체, 섬세한 묘사, 날카로운 분석력을 자랑했던 저자의 필치를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