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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박시백 글·그림 / 휴머니스트

포스트모던 시대에 ‘조선왕조실록’은 고루한 존재일까. 한·일 간의 역사문제, 역사교과서 논쟁 등이 잇따라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제 우리 시대의 뿌리인 조선의 사서(史書)를 다르게 읽고 새롭게 눈뜰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의 정사(正史)를 꿰고 있어야 한다. 대하역사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은 총 4618쪽, 2만5000컷에 조선왕조 500년의 정사를 담아낸 기념비적 책이다.

한 컷, 한 컷의 그림을 한 줄로 세우면 어림잡아 7㎞에 달하는 길이. 박 화백이 조선사 속에서 찾아내 형상화한 등장인물만 500여 명에 달한다. 초상화가 있는 경우 초상화를 기본으로 캐릭터를 그렸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분이다. 인물들의 말과 행동, 삶의 족적을 따라 상상해내 그림을 그렸다.

이 시리즈는 현재까지 70만 부가 넘게 판매됐다. 저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났을 때 “작업하면서 조선왕조실록이 정말 위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이 시리즈가 일반인들이 조선왕조실록으로 들어가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시리즈 완간에 맞춰 휴머니스트 편집부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사전’도 함께 냈다.

만화지만 어린이·청소년과 어른들이 같이 읽어야 할 책이다. 드라마·인문서를 통해 알려진 조선사 상식의 상당부분은 야사에 기댄 허상이 많다. 만화 ‘조선왕조실록’은 2003년 1권 ‘개국’을 시작으로 10여 년 만에 완결본 ‘망국’을 내면서 대미를 장식했다. 작품 초기에는 정사를 바탕으로 만화적 재미를 추구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실록 자체를 정확하게 전하는 데 방점을 뒀다. 저자는 실록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조선사 연구서들의 열독하면서 당시 상황에 대한 고증을 통해 방대한 양의 조선왕조실록을 압축했다. 그가 실록을 공부하면서 꼼꼼하게 정리한 노트가 121권이다.

강명관(한문학) 부산대 교수는 이 시리즈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의 완독은 곳곳에서 기존의 학설에 얽매이지 않는 신선한 해석을 낳는다”고 평했다.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엽기적 사건을 주로 당쟁사적 시각에서 찾는 학설이 각립했다. 하지만 강 교수에 따르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그 원인을 영조가 자신이 바라는 제왕의 상에 훨씬 가까운 세손(정조)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아들에게 죽음을 강요했다고 해석했다.

세종·문종실록을 다룬 4편을 보면 세종을 세조나 태종 등을 닮아 기골이 장대하지만 살이 찐 만화 캐릭터로 묘사했다. 세종이 독서와 연구에 집중하느라 운동할 시간이 적었다는 해석이다. 책을 보면 “세종이 특히 중시한 책은 ‘자치통감’이었는데 분량이 방대해 (선비들이) 보기를 꺼리는 이 책을 경연을 통해 강독하더니 독자적인 해설서 편찬에 나섰다”고 돼 있다. 또한 세종은 인쇄술 개선을 위해 책임자 이천을 달달 볶았다. 그 결과로 인쇄술의 빛나는 개가인 갑인자가 탄생했다. 또한 ‘글자 사이에 대나무 조각을 끼워 넣어 고정시키는 등의 인쇄 방법 개선으로 세종 이전보다 인쇄속도가 20배나 빨라졌다’는 점도 세세하게 묘사했다. 20권 ‘망국’편의 피날레는 “독립투쟁의 길은 추위와 배고픔, 고문과 투옥, 총살과 교수대 그리고 가족의 고난과 곤궁이 예정된 길이었다”며 “그 모든 걸 감당하며 역사 앞에 이름 없이 사라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조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다”고 끝맺었다. 안중근, 김구, 윤봉길, 유관순 열사 등 독립 운동가들을 한 컷에 담았다.

조선왕조실록은 총 2077책에 이르는 조선 정사의 기록으로 국보 151호이자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선정 세계기록 문화유산이다. 휴머니스트는 이 책을 해외에도 널리 소개할 계획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