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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채모(여·76) 씨는 약 먹는 것이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다.그가 하루 동안 먹는 약은 총 8개. 아침에 일어나 고혈압, 당뇨, 골다공증, 관절염, 소화불량, 수면장애, 갱년기 질환과 관련된 약을 7개 먹고, 저녁에 소화불량 약을 1개 더 챙겨 먹는다. 이것도 본래 3개 병원에서 12개의 약을 먹던 것을 줄인 것이다. 채 씨는 두 달에 한 번 병원을 방문해 진료를 받고 약을 종이백에 한 무더기 가져온다. 그는 “한 달치 약을 사는 데만 6만5000원이 든다”며 “만성질환은 완치되는 것이 아니고 죽기 전까지 관리해야 되는데 벌이가 마땅치 않아 경제적으로 힘이 든다”고 말했다.

만성질환의 공습이 가시화되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크고 작은 병을 안고 사는 노인 인구가 증가 추세다. 고혈압, 당뇨 등 선진국에서 유행해 일명 ‘부자병’이라 불리던 질환들도 서구화된 식습관의 영향으로 이제 국내에서 주요 노인 질환으로 자리잡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0년까지 만성질환이 전 세계 사망원인의 73%, 전체 질환 발생의 6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 노인 만성질환자 70%, 3개 이상 질환

이런 가운데 노인 만성질환자 10명 가운데 7명은 만성질환을 3개 이상 가진 복합만성질환자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만성질환은 혼자 오지 않고, 함께 와서 더 문제다. 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고령자의 복합만성질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의료서비스를 이용한 만성질환 노인 3만7213명을 분석한 결과, 2만6373명(70.9%)이 만성질환을 3개 이상 앓고 있었다. 이들은 개인 평균 5.1개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었고, 여성이 평균 5.3개의 질환을 가져 남성(4.8개)보다 많은 수준을 보였다.

복합만성질환 노인은 가지고 있는 병이 많은 만큼 의료비 지출도 많았다. 이들의 연간 외래 진료비(비급여 제외)는 61만3902원으로, 만성질환 3개 미만인 비복합만성질환자(23만3869원)의 2.6배였다. 이 가운데 국가가 건강보험을 통해 부담하는 액수는 각각 47만9212원, 18만6839원이었다. 복합만성질환자가 많아질수록, 의료비 증가에 따른 국가적 부담도 커지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통계 연보’에 따르면 국내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 가운데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4년 22.9%에서 2011년 33.3%로 늘었다. 노인 인구와 만성질환의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 만성질환, 위염·알레르기 가장 많아

복합만성질환자들은 기본적으로 만성위염·위-식도 역류질환이나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질환의 유병률은 각각 70.8%, 49.8%였다. 이어 만성요통(46.5%), 무릎관절증(37.3%), 고혈압(34.7%), 고도시력감퇴(30.8%)였다. 비만성질환자까지 포함한 전체 만성질환자에서도 만성질환 유병률 순위는 만성위염·위-식도 역류질환, 알레르기, 만성요통, 고혈압, 무릎관절증, 고도시력감퇴 순으로 거의 비슷했다.

이 가운데 노인 질환자의 일반적 증세인 만성위염·위-식도 역류질환과 알레르기를 제외하고 복합만성질환의 주요한 조합을 조사한 결과, 만성요통, 관절증, 고혈압을 동시 보유한 경우가 7.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만성요통+관절증+류머티즘성관절염(6.8%), 만성요통+고도시력감퇴+관절증(6.3%), 만성요통+관절증+골다공증(5.5%) 등 조합을 보였다. 특히, 만성요통의 경우 복합만성질환 조합 상위 10개 가운데 8개에 포함돼 허리통증이 노인층의 최대 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정영호 보사연 생활습관병연구센터장은 “만성요통, 관절증, 류머티즘성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은 한 질병이 다른 질병을 부르는 등 서로 연계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만성질환은 복합적으로 발생되는 만큼, 기존의 단일질환 중심 치료방식을 통합적 치료방식으로 변화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만성질환 30대부터 시작…관리 필요

만성질환은 주로 노인에게서 발병하지만, 그 시작은 30대부터다. ‘2010년 한국의료패널 기초분석’ 보고서를 보면 국내 30대 이상 만성질환자 1인당 보유한 만성질환은 평균 2.6개로, 30대 환자부터 벌써 평균 1.4개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었다. 만성질환의 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늘어 50대(2.4개)에 2개를 넘어서고 60대에 3.1개, 70대 이상에선 3.6개로 늘어났다. 따라서 만성질환은 30대부터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노인이 돼서 관리를 시작하는 것은 늦다.

오범조(가정의학)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교수는 “야간에 밀가루나 기름진 음식을 많이 섭취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간에 지방이 쌓이고 고지혈증이 오는 등 대사증후군을 앓게 되고 이것이 40∼50대에 가서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은 물론 각종 심장질환을 일으키게 된다”며 “20∼30대부터 식습관 조절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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