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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관계의 집으로 / 최우용 지음 / 궁리

참 부지런한 책이다. 그렇지만 부지런한 것만 아니라 철학적 사색과 쉽게 짓고 부수는 현대인의 어리석음을 날카롭게 통찰하는 저자의 혜안이 돋보인다.

저자는 건축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일산 밤가시초가, 제주의 ‘테쉬폰’ 주택, 경산 상엿집, 기찻길 옆 공부방 등을 둘러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다섯 가지 시선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다. 몽상가의 눈, 관찰자의 눈, 소설가의 눈, 여행객의 눈, 건축가의 눈이 그것이다.

저자는 입체적 시각으로 주로 잊혀져가거나 사라져가는 건축물, 또는 구석이나 변방으로 밀려난 건축물들이 만들어내는 거나 또는 구석과 변방에 놓인 건축물들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에 주목해 왔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집들은 대부분 매끈하고 깨끗하다. 오래된 집들도 부수거나 고쳐서 매끈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추세다. 그런데 건축에는 이 매끈함과 깨끗함에 가려져 잘 안 보이는 부분들이 많이 숨어 있다. 일상의 흔하고 흔한 대상인 건축, 매끄러운 덩어리와 외관에 가려져 있는 건축의 이면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책에 따르면 스스로 홀로 굳건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에 빠진 집들은 집이 놓일 동네의 맥락을 살피지 않는다. 또한 환경을 장식품쯤으로 여기며 삶의 활동 근간인 에너지 과용에 무감하고 그래서 자꾸만 우뚝해지고 비대해지며 자폐적으로 변해간다. 최근 지은 우뚝하고 거대한 건축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되는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으며 관계는 단절돼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웃과 함께 오손도손 정감의 공동체를 만드는 집들도 많다. 만석동의 판잣집에는 잉여와 과장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모진 가난의 최접점에서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장 값싼 재료들을 그러모아 자신들이 가진 최선의 기술을 동원하여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 뿐이었다. 판잣집들은 겨우 숨을 내쉴 정도의 공간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끌어안으며 적응과 순응 그리고 양보가 어떤 것인지를 그 존재 자체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벽안의 신부가 지은 제주의 테쉬폰 주택에는 아치가 되고 싶은 벽돌의 의지에 앞선 것이 있었다. 그것은 궁핍 또는 결핍이었다. 가난한 제주 중산간에 넘치는 재료는 억새였으며 벽돌은 비싼 재료였다. 이 신부에게는 아치가 되고 싶은 벽돌의 의지보다 제주의 가난한 현실이 당면한 문제였을 것이다. 이것이 테쉬폰 주택의 아치가 벽돌이 아닌 시멘트로 만들어진 이유일 것이다. 건축을 통해 인간 삶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독특한 책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