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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할 권리 / 김창엽 지음 / 후마니타스

이른바 ‘건강정의’를 줄곧 주장해온 저자가 의료 상업화와 과잉 의료화 현상 등을 사회의학적 관점으로 분석하고 진단한 책이다.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관점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왔던 건강과 보건의료 문제를 사회, 정치, 경제적 관점으로 확장해 해석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건강과 보건의료의 위기상황을 타개할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질병은 타고난 체질이나 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에 의해서 걸리지만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소득과 학력, 직업의 상태, 노동환경 등 사회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경제적인 처지가 담배를 피울 확률이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할 가능성, 병원을 갈 능력 등을 결정하니 말이다. 따라서 질병을 치료 혹은 예방하는 데는 생물학적이나 과학적인 의료기술의 발달 못지않게 불평등한 사회적인 요인을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런 사회적인 요인이 사회구성원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사례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 당시의 통계를 제시한다. 경제위기 발생 3개월 후부터 자살률이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식중독 환자도 2∼3배가 늘어났다. 의료이용의 불평등도 커졌다. 경제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이들은 보건소 약국 이용조차 꺼렸다. 초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병을 키우는 것은 물론이고 생사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런 시선으로 저자는 건강권을 위협하는 사회적 요인으로 소득격차와 지역격차, 성차별 등 차별적의 요소들을 두루 짚는다. 결론은 이 같은 사회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나타나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이해와 분석, 진단 및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시장위주의 의료시장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건강보험체제 아래 가격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의료기관 사이에서는 의료의 질보다 시설규모나 신기술과 장비를 놓고 경쟁하게 된다. 비싼 장비를 들여온 의료기관은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환자 유치에 몰두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낭비성 과잉진료가 횡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판의 대상은 건강을 온전히 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으로 치부하거나, 의료의 공공성보다는 상품화를 가속화하는 언론이나 기업으로 확장된다.

이 책의 미덕이라면 불평등한 사회적인 요인에 대한 비판을 넘어 대안을 구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이른바 ‘건강 민주주의’와 함께 저자가 내미는 새로운 개념은 ‘건강레짐’이다.

저자에 따르면 레짐이란 ‘가치, 규범, 규칙의 총합으로 정책을 일정한 방향으로 결정하는 틀’을 말한다. 저자는 ‘건강레짐’을 통해 참여와 사회적 토론을 거쳐 소득불평등을 조정하고 빈곤율을 낮추며 고용률을 높이는 등의 노력을 통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