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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 로버트 스키델스키·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 부키

“돈이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케인스 전문가인 아버지와, 미학과 도덕철학을 전공한 철학자 아들이 함께 쓴 책의 제목을 질문으로 던져본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충분한 액수는 다르겠지만 최소한 이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이 시대 사람이라면 최소한 ‘충분한 필요 이상’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필요 이상의 돈’을 얻게 되는 즉시 삶이 그 수준으로 리셋되면서 ‘충분한 돈’의 액수는 다시 올라간다. 우리 시대는 돈과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시대다. 스키델스키 부자는 “돈에 대한 사랑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시대로 돈에 대한 사랑이 최고가치인 사회에서 행복한 삶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정치·경제학서부터 이 시대를 우울증이 만연한 피로사회로 진단한 철학책, 도시를 떠난 이들을 위한 귀농지침서에 힐링 자기계발서까지 넘쳐나는 시대에 이들의 담론은 그리 새롭지 않다. 오히려 상당히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이들이 시대를 비판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 대안을 모색했다는 점은 강점이다. 그리고 이 강점보다 더 마음을 끄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등 동서양의 사상을 두루 점검해 ‘돈’이 아니라 ‘좋은 삶’이 인생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개념의 틀’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케인스 전기 3부작을 쓴 저자(로버트 스키델스키)답게 책은 케인스의 빗나간 예언에서 시작한다. 1928년 케인스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강연을 펼쳤다. 당시 자본주의에 환멸을 느낀 학생들에게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더 효율적인 유토피아임을 납득시키기 위한 강연으로 2년 뒤 같은 제목의 짧은 에세이로도 출간됐다. 여기서 케인스는 100년 뒤 선진국의 생활 표준은 4∼8배 높아지고, 사람들은 주당 15시간만 일해도 물질적 필요가 충족되는 유래없는 자유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30년을 불과 17년 앞둔 현재 케인스의 예언은 틀린 게 분명해 보인다. 물질적으로 풍요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심한 경쟁에 내몰리는 기막한 현실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모순에 대해 저자들은 “악마와 계약을 맺은 대가로 상상 못할 힘을 얻은 파우스트”에 비유한다. 이어 자본축적과 경제성장 논리가 어떻게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부채질해 돈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여기게 하는지 추적하며 ‘파우스트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 전체로 볼 때 매우 예외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낸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책은 최근의 행복경제학의 연구성과와 한계를 통해 대안에 접근한다. 행복경제학이 경제성장이 언제나 만족스럽지 않고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인간의 행복을 주관적 판단이나 삶의 만족정도로 이해한 점에선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행복한 삶이란 “즐거운 심리적 상태나 욕망이 충족된 삶이 아니라 인간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선 또는 좋음들이 구현되는 삶”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사회의 정책 방향은 ‘좋은 삶’을 위한 기본재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삶을 위한 기본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 등이다.

▲주당 노동시간 제한 ▲법정휴일 확대 ▲광고줄이기 ▲세계화 속도 조절 등이 이들이 제안한 구체적 정책이다. 세계화속도 조절이 가능할까 생각하면 이들의 대안도 그리 현실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고도화된 자본주의체제가 균열을 내고 있는 시대에 이 같은 주장과 제안은 여전히 유의미하며 거대한 시스템 속에 매몰된 작은 개인들로서는 이 책을 펼쳐 자신과 시대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행위 자체가 의미있는 대안 모색이기도 하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