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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통령 이승만 / 유영익 지음 / 일조각

2013년 5월 현재 한국사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1875∼1965)처럼 화제의 인물도 없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다큐 ‘백년전쟁Ⅰ- 두 얼굴의 이승만’이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되면서 시작된 논쟁은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논쟁의 참여 당사자들 모두 이념적 흑백논리의 잣대로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재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 단계 한국사회의 퇴행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이 점에서 연세대 석좌교수 재직 시절인 1994년부터 이화장에 소장돼 있던 ‘이승만 문서’를 정리·편찬 및 연구해 온 저자(77·한동대 석좌교수)가 최근 펴낸 책은 지난 20년 동안 자료에 바탕을 둔 실증 연구의 결과물로 주목된다. 좌우 이념을 떠나 경청해야 할 주장들을 많이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저자도 책의 서문에서 “이승만을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나 그저 우상시하는 사람들 모두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그를 이해하고 평가해왔다”고 지적한다.

‘생애·사상·업적의 새로운 조명’이란 부제가 붙은 책은 저자가 1997년 8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발표한 논문 5편에 최근 탈고한 글 한편을 추가해 엮은 것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이승만의 정치 역정을 새롭게 정리한 1장에서 이승만이 1943년 12월 1일 공포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역사적인 ‘카이로선언’ 탄생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한국인 공로자였음을 강조한다. 이는 대다수 이승만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승만의 외교독립운동이 완전히 도로(徒勞·헛수고)에 그친 게 결코 아니었음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마침 올해는 카이로선언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사실 그동안 국내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국의 완전독립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삽입된 카이로선언의 배경으로 장제스(蔣介石) 중화민국 총통을 주목해왔다. 그가 1943년 7월 26일 충칭(重慶)에서 김구·조소앙 등 임시정부 대표들을 만났을 때 공약한 사항을 카이로회담에서 주창한 결과로 봐 온 것. 하지만 최근 카이로선언 작성과정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이집트 카이로에서 한국 독립 문제를 장제스에게 먼저 제기한 사람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었고, 카이로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한 사람도 루스벨트의 특별보좌관 해리 홉킨스였다. 정작 장제스는 1943년 11월 22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카이로에서 열린 회담 도중 한 번도 한국 문제를 공식 거론한 일이 없다고 한다.

홉킨스의 초안을 토대로 미·영·중 3국 대표단이 협의해 11월 27일 완성한 공동선언문은 다시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회담에서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동의를 거쳐 카이로선언이란 이름으로 공포됐다.

선언문 내용 가운데 한국 독립 보장 내용은 홉킨스가 작성한 초안 그대로였음을 지적한 저자는 카이로선언의 기획자는 장제스가 아니라, 미국의 두 기독교 지도자인 루스벨트와 홉킨스였으며, 두 사람에게 한국 독립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 이는 이승만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이승만이 1941년 8월 루스벨트와 그의 부인 엘리너 여사에게 일본의 미국 공격을 예언한 자신의 영문저서 ‘일본 내막기:오늘의 도전’을 증정한 것이나 카이로선언 이전 최소 3차례 이상 루스벨트에게 친서를 보내 한국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한 점, 한미협회·기독교인친한회 등 친한 로비단체를 결성해 워싱턴 정가에서 활발한 로비활동을 펼친 사실 등이 저자가 제시하는 이유다.

따라서 저자는 이승만이 1919년 이후 1945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 구미위원부 창설자, 그리고 충칭 임정의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등의 자격으로 끈질기게 전개한 모든 외교·선전 활동이 상당히 중요하고 실속 있는 성과를 거둔 운동으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해방 후 재빠르게 국내 정치 기반을 구축한 다음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로 끝난 1946년 6월부터 미국 정부를 설득해 원래의 신탁통치 계획을 포기하고 남한 주민의 총선거로 대한민국을 자율적으로 건국하는 운동을 지지하게 만든 것도 이승만 외교 독립 노선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이 이룩한 업적과 실정을 따질 때 ‘공 7, 과 3’ 이상으로 채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물론 책을 읽어본 뒤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의 몫이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