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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서울대 경영대 교수·경영학

25일자 신문에는 재미있는 두 가지 기사가 실려 있었다. 처음 기사는 한국은행에서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9%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내용이다. 정부가 당초 예상했던 0.5%보다 0.4%포인트나 더 높은 기대 이상의 지표다. 사회 일각에서는 드디어 한국경제가 바닥을 치고 회복세로 돌아선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감마저 갖는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2분기 0.3%, 3분기 0.0%, 4분기 0.3%로 그야말로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같은 날 발표된 또 다른 기사로, 우리의 시선을 붙잡았다. 통계청이 지난 3월 국내 인구 이동에 관한 자료를 발표한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월간 국내 인구 이동 수는 66만2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도 7.6%, 즉 5만5000명이 줄었다. 이러한 수치는 3월 한 달 동안 이동한 인구 숫자를 기준으로, 1975년(55만4000명) 이후 3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그뿐만 아니라, 인구 100명당 이동자 수를 보여주는 인구이동률 역시 지난 3월에는 1.31%로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3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상의 두 가지 통계지표가 현재 한국경제가 처해 있는 양면적인 실정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좋아진 것은 연초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같은 설비투자가 좋아졌고, 경기도의 동탄신도시 개발 및 발전(發電) 설비에 대한 투자, 그리고 수출이 다소 개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정작 한국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서민들이 도저히 피부로 체감할 수가 없다. 한국은행의 25일 발표를 보고 조만간 실물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서민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반면 부동산 경기와 인구 이동, 그리고 이자율 문제는 서민 경제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한 사람이 집을 팔면 집을 판 사람이 또 다른 집을 사야 하고, 동시에 이들에게 집을 매도한 제 3, 4의 집주인들도 집을 사야 한다. 또 주택 거래가 일어나면 부동산업계와 이사업체, 인테리어 업체, 가전 및 벽지 업체까지 연쇄적으로 매출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거의 대다수가 영세 자영업자이자, 한국경제의 주축이 되는 서민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개인 가처분소득에 대한 가계 부채비율이 136%로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어림잡아도 일반 가정 10가구 중에서 적어도 7가구 정도가 가계 부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 이자율은 서민들의 지갑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따라서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서민들이 느끼는 실물경제는 상대적으로 아주 차갑기만 할 것이다.

경기가 나쁘고 경제 여건이 어려울수록 부유한 계층보다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서민들이 훨씬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예상보다 높은 1분기 GDP 성장률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상위 20% 계층이라면, 대다수의 서민은 38년 만에 인구이동 최저치, 2003년 이래 가장 높은 가계부채 비율이라는 숫자들을 피부 깊숙이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와 한국은행이 이자율 문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물론 섣부른 이자율 인하로 물가를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5년 이상 서민들은 경제 여건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이자율 인하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해 실물경제가 좋아지기를 마냥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인내심을 잃어가는 서민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경제회복을 위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보낼 것인지를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의사결정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