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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책자-강상중의 도시 인문 에세이 /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재일 한국인 강상중 세이카쿠인(聖學院)대 교수는 스스로를 ‘도시의 스트레인저(이방인)’라고 부른다. 재일 한국인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었던 그였기에, 구마모토(熊本)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 입학하면서 올라온 도쿄(東京)에서 “사람들이 이리 많은데 아는 얼굴은 없다”는 적막감에 시달렸던 그였기에, 그리고 1971년 스물한 살에 처음 찾은 서울에서 이미 현대화될 대로 현대화된 도쿄에서 볼 수 없었던 펄떡거리는 열기에 당황한 그였기에 그는 숙명적으로 ‘도시의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자의 개인적 내력뿐 아니라 도시라는 것 자체가 다양한 타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모두가 ‘누군가의 타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도시인 모두가 속절없이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책은 도쿄의 이방인인 저자가 도쿄 중심과 변두리 곳곳을 직접 걸어다니며 육체와 정신을 모두 동원해 쓴 인문 에세이이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도시 분위기가 주는 통각에 솔직히 굴복하며 이들 감각이 소환하는 인문학적 지식을 풀어놓았다.

메이지(明治)신궁과 산자마쓰리(三社祭), 호텔 포시즌을 돌아보며, 일상으로의 해방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자취를 찾아다니며 도쿄의 먼 근대화 모습을 더듬는다. 이런 산책 속에서 그는 소세키가 당대를 신경증의 시대라고 칭했다며, 21세기는 우울증의 시대라는 식으로 사유를 풀어낸다. 긴자(銀座)의 명품 거리에서는 개인의 욕망을 읽어내고, 진보초(神保町) 고서점가에서는 아날로그적 지적 문화를 발견한다.

오타쿠의 성지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는 “오타쿠 문화는 과도하게 풍요한 사회에서 개인이 타자와 소통이 끊어진 채 혼자서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며 개인의 원자화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이 도쿄 산책자는 도쿄 곳곳을 걸으며 도시의 우울증과 외로운 개인에 대한 해결책을 말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그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

21세에 서울을 처음 방문한 그는 흙탕물로 빨래하고 구걸하는 맨발의 소년들에게 충격을 받았지만 도쿄와 다른 해방감을 느꼈고, 서울의 건물 사이로 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서울의 석양도 도쿄 석양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아릿해졌다고 한다.

이 같은 경험은 강상중이라는 자기 안에 여러 얼굴이 있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리고 여러 얼굴을 품고 있는 개인처럼 다양한 배경과 과거를 짊어진 사람들이 만든 도시 역시 숱한 타자를 품고 있으며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서로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다만 타자와 뒤섞여 사는 여러 얼굴의 도시에서도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은 개인을 지탱하는 뿌리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중한 기억이 깃든 장소가 있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도, 자신을 잃어버리지도 않는다. 내가 자란 구마모토의 풍경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밀접하게 결부돼 있고, 슬픔, 좌절, 기쁨은 모두 그곳에 간직돼 있다”라며. 그래서 책 속에서 강상중과 함께 도쿄를 걷다 보면 나의 공간은 어디인지, 그 기억을 좇아가게 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