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강요배의 ‘동’ 일부. 학고재갤러리 제공

다시 평면의 회화다. 첨단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현대미술도 영상, 미디어, 설치의 시대라지만 봄의 전시장에는 전통 장르인 회화에 집중한 중진·원로작가들의 개인전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라지는 근대건축을 주목해온 장화진(64) 씨는 금호미술관 전시를 통해 창문 타일 등 건축의 구성요소를 화폭에 펼친다. 또한 20년여 제주에서 작업 중인 강요배(61) 씨는 학고재갤러리에서 추상으로 향하는 신작을 공개한다. 파격적 실험의 전위작가 김구림(77) 씨의 회화를 한데 모은 전시회가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열린다.

◆ 입체에서 그림 속으로-장화진의 창그림 = 세월과 더불어 서서히 사라지는 역사 현장, 근대건축에 대한 관심을 미술로 펼쳐왔다. 1996년 조선총독부 건물이던 중앙청 철거과정을 지켜보며 2000년 광화문프로젝트와 2004년 조선총독부 프로젝트 및 숭례문 화재 이후 2010년 숭례문프로젝트, 2008·2011년 서대문형무소·강화도 성공회성당 프로젝트로 건축을 주목한 작품을 시도했다.

금호미술관의 ‘공간의 굴절과 기억’전(28일까지)을 통해 장 씨는 회화 위주의 신작을 선보인다. 2004년 성곡미술관 전시 이후 9년 만의 개인전이다. 2000년대 문, 액자 시리즈를 통해 ‘틀(프레임)’을 주목해온 작가는 이번에 서대문형무소, 강화도 성공회성당 등 근현대 건축을 토대로 문, 창틀부터 벽지, 간판, 커튼까지 건축의 부분을 다채롭게 재구성한다.

3층 전시장에는 가로 세로 0.8×1.3m 크기의 유리창 틀처럼 짠 동일한 10개의 캔버스에 빛이 반사되는 각양각색 유리창 그림을 나란히 걸었다. 붉은 벽돌건물인 서대문형무소와 강화도 성공회성당의 변주를 시도한 작품도 색과 형태의 반복과 변형이 돋보인다. 그는 연초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명예관장직을 새로 맡았다

◆‘제주화가’ 강요배의 추상 = 지난 61년간 삶의 터전은 20년 단위로 제주-서울-제주로 바뀌었지만 작업은 줄곧 평면의 회화였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시기를 거쳐 1990년대 초 4·3사건을 주목한 ‘제주 민중항쟁사’ 시리즈를 발표했다. 20년 전 귀향해 제주 한림읍 귀덕리에서 작업한 뒤로는 그림 속으로 제주도의 산과 바다, 하늘과 바람 등 제주의 풍경이 들어섰다.

2008년 이후 5년 만의 개인전이 학고재갤러리에서 21일까지 열린다. 전시작 50여 점 중 작업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동틀 녘 및 계절이나 시간대에 따라 푸르고 검게 빛나며 제각각의 얼굴을 드러내는 하늘그림이 특히 돋보인다. 비바람이 거세거나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 한라산 백록담을 그린 신작은 표현이 절제된 추상화처럼 이미지가 해체되고 흐릿해졌다. 사각의 검정 창틀 사이로 푸른 하늘이 열리는 듯한 ‘여명’은 색면추상처럼 저 너머의 풍경을 안고 있다. 명주처럼 곱고 투명한 푸른 바다, 누런 호박과 붉은 칸나꽃 그림도 천지만물의 생동감을 표현하는 동양화 특유의 기운생동이 느껴진다.

그는 고향 제주가 기후 변화와 자연의 질감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으며, 작업의 위안을 얻고 마음을 다잡게 하는 환경이라고 제주 예찬론을 편다.

◆‘전위작가’ 김구림의 회화 = 1960∼1970년대 일찌감치 설치 행위예술 비디오아트를 펼쳤던 ‘전위예술의 선구자’다. 일본·미국 생활을 거쳐 2000년대 이후 국내에 거주하며 여전히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여왔다.

보디페인팅, 강둑의 잔디를 태우는 대지미술 등을 실험해온 그가 평면회화로 개인전을 갖는다. 통인옥션갤러리에서 24일까지 열리는 ‘끝없는 여정’전을 통해 평면회화를 선보인다. 전시작은 1970년대 ‘정물 시리즈’와 30년 후인 2000년대 ‘음양 시리즈’의 두 가지. 누런 바탕에 이젤, 유리병 등을 아크릴과 목탄으로 담아낸 1970년대 ‘정물’ 시리즈는 당시 상업화랑 전시로도 호평을 얻었다. 신작 ‘음양’은 붉은 입술과 반라의 몸 등 광고 속 여성 이미지를 출력한 디지털 프린트에 붓질을 더해 원래의 형상을 부분적으로 지워낸 작품이다. 서예의 필획처럼 그은 붓질과 흘러내린 물감이 이뤄내는 독특한 화면은 성형을 권하는 현대사회의 부작용을 상징한다. 이달 초 막내린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의 기획전에도 데이비드 호크니, 잭슨 폴락 등 현대미술 거장과 더불어 그의 1970년대 보디페인팅 사진이 전시됐다. 오는 7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김구림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장화진의 ‘붉은 벽돌집’. 금호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