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이정학 기자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영어 수다 /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휴머니스트

전 세계 어느 공항의 서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영국의 신문기자이자 작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화제작을 내놓은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다. 한국에 브라이슨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책은 2003년 출간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영국 아마존 1위, 미국 아마존 2위를 차지하는 등 해외에서 일찌감치 베스트셀러에 오른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자, 2008년부터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산책’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등이 잇달아 나왔다. 이제 빌 브라이슨이 만든 책은 한국에서도 일정한 독자층을 형성하며 그의 이름만으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영어 수다’는 영어의 역사와 현황에 관한 책이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현존하는 가장 유머스러운 작가’라는 찬사에 걸맞게 영어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유머와 버무려 독자들에게 책 읽는 재미를 듬뿍 선사한다.

책에 따르면 영어는 1500년 전, 로마 군대가 영국에서 철수한 뒤 영국으로 간 앵글로색슨인에 의해 시작됐다. 이 섬에서 로마인은 367년, 토착민인 켈트인은 최소한 1000년 이상 있었지만 이들이 남겨 놓은 것은 거의 없었다. 영국에 로마인이 남긴 단어가 기껏해야 5개뿐이고, 켈트인이 남긴 단어조차 20개를 넘지 못했다. 그나마 대개는 영국 내에서 비교적 언덕이 많고 변화무쌍한 지형을 가리키는 지리학 용어에 국한되는 실정이었다. 이후 영어에는 최후의 대격변이 찾아왔다. 1066년 노르만인의 정복이다. 영국의 노르만인 사회는 두 계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프랑스어를 말하는 귀족 계급과 영어를 말하는 농민 계급으로 말이다. 그러니 영어는 이류 언어였던 셈이다. 지속적으로 난타당하고 은밀하게만 계승되고, 수세기 동안 농부들이나 사용하는 부적절한 이류 언어로만 간주되던 영어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공적인 언어로 부상한 것일까.

브라이슨은 영어의 낮은 지위가 오히려 영어를 더 단순하고 굴절이 덜한 언어로 만드는 데 분명하게 일조했다고 말한다. 아울러 개방성에서 영어의 생명력이 강해진 이유를 찾는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언어가 풍부하고 표현력이 뛰어나게 된 것은 단순히 새로운 단어들이 거기 덧붙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단어들이 열렬히 환영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진실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실제 노르만 통치 기간에 영어 방언이 늘어난 덕에, 15세기에는 영국의 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영어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2000개가량의 단어를 고안하고 수많은 명언을 남기며 영어를 활짝 꽃피우게 했다. ‘one fell swoop’(한 번 덮쳐;단번에), ‘more in sorrow than in anger’(성난 얼굴이라기보다는 슬픈 표정으로), ‘to be in a pickle’(술독에 빠져서;곤경에 처해서), ‘play fast and loose’(팽팽했다 느슨했다 한다;변덕스러워 믿을 수 없다) 등이 셰익스피어의 발명품들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시대에도 영어는 영국 제도 전체를 정복하진 못했다.

영어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저지에서만 사용됐고, 웨일스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저지(하일랜드) 등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 베이컨의 ‘노붐 오르가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등도 라틴어로 출간됐다. 17세기까지도 영어는 여전히 이류 언어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브라이슨은 영어 문법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유도 짚는다. 이는 규칙과 용어가 영어와는 공통적인 부분이 극히 드문 라틴어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라틴어와의 불일치를 조정하기 위해 문법학자들이 더 복잡하고 순환적인 논증을 고안하게 됐다는 것이다. 브라이슨은 “영어 문법을 라틴어의 규칙에 순응시키려는 것은 사람들에게 야구경기를 풋볼의 규칙에 따라 해 보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꼬집는다.

브라이슨은 단어의 유래, 발음, 영어의 변종, 세계 언어가 된 영어, 이름, 욕설 등의 주제로 ‘영어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을 다룬다. 그렇다면 저자는 영어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볼까. “혹시나 우리가 영어의 미래에 대해 품어야 할 걱정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영어의 다양한 흐름이 서로 동떨어질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피차 구별할 수 없게 동질화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슬픈, 얼마나 슬픈 손실이 되겠는가.”

이 책의 영어판은 20여 년 전인 1990년에 나왔다. 책을 옮긴 박중서 씨는 “이 책은 특정한 주제를 잡아서 지식과 유머를 버무린 ‘빌 브라이슨 표’ 글쓰기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며 “기존의 ‘발칙한’ 여행서 시리즈라든지, 또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나 ‘나를 부르는 숲’ 같은 저서를 먼저 접한 독자라면, 브라이슨의 독특한 유머 감각이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영어 수다’에서 전면적으로 발휘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약간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이 책에는 유익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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