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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소설가 신경숙(50) 씨가 짧은 이야기 26편을 모은 창작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문학동네)를 펴냈다.

신 작가로서는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경쾌하고 밝은 이야기들을 모은 창작집은 삶의 귀퉁이에서 반짝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다. 소박한 일상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발견해내는 작가 특유의 감수성에 은근슬쩍 숨겨놓은 유머들이 돋보인다. 읽는 이를 슬며시 미소짓게 하는 유머 뒤에는 이 세상이 결국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일구어나간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소중한 진실도 숨어 있다.

신 씨는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고 나면 며칠은 마음이 가라앉아 평상심을 되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즐거운 이야기는 쓸 계획이 없냐고 묻기도 한다”며 “그때마다 좀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상하네, 내가 쪽지처럼 숨겨둔 유머들은 왜 발견되지 않는 거지? 속도 상하고 그랬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패러독스나 농담이 던져주는 명랑함의 소중한 영향력은 나에게도 날이 갈수록 매혹적으로 다가온다”며 “명랑함 없이 무엇에 의지해 팽팽하게 긴장된 삶의 순간순간들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느냐”고 했다.

신 작가의 말처럼 창작집은 유쾌한 반전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창작집에 처음으로 수록된 ‘아, 사랑한담서’가 그 대표적인 작품. 지금은 노인들만 살고 있는, 조용한 시골마을이 딱 한 번 소란스러워진 적이 있다. 마을에서 십 리 바깥의 읍내에 교회가 새로 생겼다. 젊은 목사는 사흘에 한 번꼴로 교회의 미니버스를 타고 마을로 와 할머니들이나 노인정에 모여 있는 할아버지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하느님을 이야기하고 다녔다. 심지어 마을 뒤쪽 산에 있는 절의 스님에게도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했다. 하지만 스님은 묵묵히 젊은 목사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 여름날, 읍내에 나갈 일이 생긴 스님이 마을로 내려와 찜통 더위를 견디며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교회 미니버스에서 내린 목사가 스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또다시 교회에 나올 것을 종용했다. 돌아앉는 스님에게 집요하게 달라붙는 젊은 목사. 마침내 젊은 목사는 외면하는 스님의 턱 밑에 얼굴을 들이밀며 이렇게 외쳤다. “내가 왜 이러는 줄 압니까? 바로 스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발끈한 스님은 “뭐야? 사랑해야?”라며 젊은 목사의 멱살을 잡고 오른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눈이 휘둥그레진 젊은 목사가 “아아 스님, 이거 놓고!”라며 당황해하자 스님 왈 “놓긴 뭘 놓아야. 자 왼쪽도 대드라고. 아, 사랑한담서!”

이처럼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신 씨는 앞으로의 작품 방향과 관련, “그러나 내 글쓰기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그쪽(경쾌함과 명랑함)으로 옮겨갈 수는 없다”며 “삶의 변화나 재발견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끝이 어찌 되리란 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 허망함을 뒤에 진 채로 기어코 저 너머까지 가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유한한 행보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스물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달빛처럼 스며들어 읽는 이를 반짝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