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왕단이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운집한 군중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동아시아 제공

왕단의 중국현대사 / 왕단 지음, 송인재 옮김 / 동아시아

1989년 발생한 중국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은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기념비적 사건으로 꼽힌다. 그해 4월 15일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 사망이 도화선이었다. 추모 행렬이 톈안먼 광장에 운집하면서 시위대로 변했고, 결국 그해 6월 4일 인민해방군의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사회주의 이념이 중국인을 하나로 묶어내지 못한다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이 사건은 중국에서 금기다. 1960년대 발생한 문화대혁명 같은 중요한 사건도 금기다. 중국현대사의 중요한 뼈대가 모두 금기인 것이다. 그러니 중국에서 나온 중국 현대사가 제대로 된 현대사일 수 없다.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가 주입된 ‘혁명사’일 뿐이다.

‘왕단의 중국 현대사’는 그런 금기를 깨고 중국 현대사의 진실을 추적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부터 문화대혁명, 톈안먼 사건, 개혁·개방 등을 거쳐 최근 시민사회의 성장에 이르기까지 중국 현대사의 핵심을 아우른다. 저자가 보기에 대륙에서의 중국현대사는 은폐와 왜곡이 이뤄졌고, 외국에서도 자료의 한계 때문에 대륙의 현대사에 대한 인식은 ‘안개 속에서 꽃을 보는 격’이다.

왕단(王丹)이 누구던가. 바로 톈안먼 사건의 주역이자 학생 지도자였다. 사건 이후 당국이 발표한 학생 수배자 명단 맨 앞에 그의 이름이 올랐다. 체포된 뒤 ‘반혁명선전선동죄’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석방 후 정치적 반대운동을 지속한 그는 1995년 ‘정부전복음모죄’로 다시 체포돼 1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국제여론의 압력으로 조기 석방돼 1998년 미국으로 추방당했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세 차례나 오른 그는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학자로 변신했다.

이 책은 그가 대만의 칭화(淸華)대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평가받은 내용을 정리한 역사서 ‘중화인민공화국사 십오강(十五講)’의 한국어판이다. 지난해 대만에서 출간되자마자 중국 정부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왕단은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쓴 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사는 국가 폭력과 사회적 공포가 교차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면서 “‘두려움’이라는 말을 제쳐놓고는 중화인민공화국 정권과 중국의 정치 생활에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이 가져다준 깊숙한 영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특히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배경을 분석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왕단은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마오쩌둥(毛澤東)이 민족주의를 의도적으로 자극해 중국 각 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정치적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앞서 중국 공산당이 내전 승리를 쟁취하면서 든 기치 중 하나는 중국 공산당만이 중국 인민을 이끌어 외세의 굴욕에 대항하고 중화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같은 민족주의는 현재까지도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지지를 얻는 주요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고 있다.

왕단은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중국이 서양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더욱 강하게 보여준 것은 건국 초기 국민의 정신적 역량을 재빠르게 응집시키고 인민이 마음속에 중국 공산당과 마오쩌둥의 위엄과 명망을 세우는 데 유리하다”고 해석했다.

거대한 재앙을 부른 대약진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을 든다. “4000만 명의 아사를 초래하는데도 안정적 통치를 유지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폭력과 기만에 있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하나의 주제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이것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적 현상, 더 나아가 현실적 문제를 해석할 수 있다.”

왕단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자 사상적 고향인 6·4톈안먼 민주화운동에 대해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 이야기한다. 당시를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사건의 원인, 평가, 의의를 깊이 있게 서술해 톈안먼 사건을 제대로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번역한 송인재 한림대 HK연구교수는 “이 책의 의미는 ‘인기 강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며 “현재 중국 공산당 정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향후 중국의 정치적 전환에 대한 방안과 전망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평했다. 중국 현대사에 대한 은폐와 왜곡을 넘어 진상과 또 다른 이면을 만나고, 안개를 걷어내고 꽃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시길.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