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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배우의 예술’임을 증명하는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15일부터 3월 10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에이미’(사진)다. 영국 극작가 데이비드 해어의 작품인 ‘에이미’는 현대사회의 세대 갈등을 주축으로 가족 간의 사랑과 배신, 용서와 화해를 보여준다.

전체 4막에 걸쳐 15년의 세월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연극은 딸 에이미를 중심으로 남편 도미닉과 어머니 에스메, 할머니 이블린, 그리고 엄마의 재산관리인이자 연인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랭크 등이 펼치는 가정사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이 가운데 에스메와 도미닉, 즉 장모와 사위 간에 벌어지는 갈등이 극의 주된 뼈대를 이루고 있다.

어머니 에스메 역을 맡은 배우는 윤소정, 딸 에이미 역은 서은경, 남편 도미닉 역에 정승길, 할머니 이블린과 프랭크 역에는 백수련과 이호재가 각각 출연한다. 명실상부 베테랑 배우들의 명연기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특히 윤소정은 연극 ‘에이미’의 주역 중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에스메 역을 맡아 그야말로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다. 마치 에스메 역이 윤소정을 위해 있는 듯하다. 윤소정이 바로 에스메이며, 에스메가 바로 윤소정이라는 말이다.

극 중 에스메는 런던에서 공연을 마치고 매번 런던 외곽의 자택까지 택시로 귀가하면서, TV 출연배우를 비웃는 자의식에 사로잡힌 연극배우다. 자아도취적이며 고집스러운 그녀의 태도는 시대의 변화를 부정하는 몸부림으로도 비친다. 그녀에게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위 도미닉의 출현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다가온다. 고상한 순수예술을 추구하는 에스메에게 도미닉은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무대예술을 진부하다고 여기는 도미닉은 에스메에게 ‘연극이라는 장르는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정통연극에 대한 에스메의 고집과 현실회피적인 태도는 그녀를 계속해서 무대에 서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는 영화감독으로서의 꿈을 보란 듯이 이뤄 내는 도미닉과 첨예하게 대비된다. 두 사람을 통해 구세대와 신세대, 전통과 새로움, 연극과 미디어, 예술과 대중 등이 첨예하게 대비된다.

그렇다면 에이미는 어디에 위치하는가. 에스메와 도미닉의 충돌로 대변되는 두 세대 간 갈등의 중심에는 에이미가 있다. 에이미는 두 가치관을 모두 인정하고, 화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 같은 에이미의 시각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 코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원제가 ‘에이미의 관점(Amy’s View)’인 것이다. 연극 말미에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도미닉과 머뭇거리면서도 여지를 남겨두는 에스메의 태도는 바로 에이미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극 중에서 에이미는 산책길에 불의의 사고로 저세상 사람이 된다. 이를 또 달리 해석하자면 두 세대 간 갈등의 절충점을 찾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 중간자적 인물이 존재하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같은 에이미의 관점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달라지는 대중의 정서와 그 앞에서 고뇌하는 작가 자신의 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부언하자면, 에스메 역의 윤소정과 에이미 역의 서은경, 도미닉 역의 정승길뿐만 아니라 극 중에서 마치 배경처럼 출연하는 이블린 역의 백수련과 프랭크 역의 이호재의 호연이 연극 ‘에이미’를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하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연출 최용훈. 1644-2003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