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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국가 북한 / 권헌익·정병호 지음 / 창비

지난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으로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조만간 4차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동토의 왕국’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북한의 무모한 행동이 한반도는 물론 세계 평화와 안보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구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에다 대규모 기아 사태를 겪으면서도 북한이 무너지지 않은 점이다. 오히려 전대미문의 3대 권력세습을 통해 그들만의 폐쇄적인 방식을 강화하며 체제를 유지해가고 있다. 북한은 과연 불가사의한 국가일까.

이 책 ‘극장국가 북한’은 북한 체제 유지의 미스터리가 무엇인지 다각도로 분석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권헌익 석좌교수와 정병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지난해 ‘North Korea:Beyond Charismatic Politics’라는 영어본으로 먼저 출간한 뒤, 이를 직접 번역한 책으로 5년여에 걸쳐 공동작업한 역작이다.

저자들은 서론을 통해 “북한 정치체제에는 미스터리가 없다. 북한이란 국가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며 그랬던 적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저자들은 대신 “북한 정치체제의 수수께끼는 특이한 개인숭배의 관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관행의 특이한 지속성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 권력은 사회적 위기 때 등장했다가 그 사회가 일상의 질서를 되돌아가면 서서히 사라져 전통적 권력이나 합리적·법적 권력에 그 자리를 내준다고 봤다. 이들은 “냉전시대 카리스마적 인물들은 베버가 예견했던 대로 카리스마 권력의 역사적 운명을 따라 극적인 흥망성쇠를 겪게 되었다. 북한만이 예외”라고 했다.

이쯤에서 이 책의 연구 내용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들은 “이 책은 북한에서 지속되어온 카리스마 정치의 역사적 기원과 오늘날의 현실을 탐구했다”며 “북한의 정치체계가 카리스마 권력의 비영속성을 어떻게 넘어섰으며, 베버가 ‘혁명적 카리스마의 관례화(일상화)’라고 부른 것을 어떻게 그렇게 놀랄 만큼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명백히 세습적인 형태의 통치권 승계로 이뤄냈는지 연구했다”고 설명한다.

‘극장국가’는 그런 북한을 저자들이 들여다보는 ‘창’이다. 극장국가는 20세기 저명한 인류학자인 클리퍼드 기어츠가 1979년에 낸 권력이론이다. 기어츠가 인도네시아 발리 네가라의 사례를 통해 제시한 개념으로, 물리적 강제가 아닌 화려한 의례와 공연 등 과시의 정치로 통치되는 국가를 통칭해 말한다.

책에 따르면 과시적 권력을 드러내는 ‘현대적 극장국가’의 대표적인 스펙터클은 아리랑축전이다. 해마다 10만 명 이상의 학생·여성·군인이 고도로 훈련된 시민-배우로 참가하는 아리랑축전은 북한의 극장국가 정치가 정점에 이른 시기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북한 정치체제의 기원과 역사, 미래의 열망을 집단예술공연으로 보여주는 ‘예술과 정치의 첨예한 결합체’인 이 집단극은 공연에 참여한 시민들 스스로가 국가의 메시지를 몸짓과 목소리로 표현하면서 ‘일심단결’이라는 북한 고유의 상징을 마음속 깊숙이 느끼게 된다. 이런 공연은 북한 주민에게는 도덕적·정치적 슬로건을 제시하고, 국제사회에는 핵심적인 외교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아리랑 공연은 2002년에 들어서야 선보였지만 아리랑의 주요 구성 요소는 김일성의 60회 생일 기념을 맞은 1972년 전후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다. 혁명 가극 ‘피바다’(1971년)와 ‘꽃 파는 처녀’(1972년)가 대중에게 공개된 때부터 ‘과시, 주시, 드라마’를 통한 권력의 생산이 이뤄진 것이다. 201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제65돌 기념일에 68세의 김정일과 그해 9월 28일 장군으로 임명된 28세의 김정은이 북한 대중 앞에 처음으로 함께 출연해 군사퍼레이드를 사열하는 국가적 스펙터클을 연출했다. 김정은의 등장도 극장국가의 틀 안에서 이뤄진 것이다. 책은 이밖에 김형직-김일성 부자의 ‘두 자루의 권총’일화와 김일성-김정일의 ‘한 자루의 권총’이야기를 통해 북한이 선군정치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 과정도 차례로 풀어본다.

저자들은 현대적 극장국가는 자랑스러운 성취이면서도 비극적 실패이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북한은 카리스마의 자연적 수명에 저항하여 영원한 권위를 성취하겠다는 각오로, 인위적이고 과장된 대중 동원의 예술정치로 무장한 극장국가로 변모해가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쳐 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카리스마 권력에 대한 숭배는 정치와 행정 권력의 극심한 중앙집중을 야기했고, 이는 사회주의혁명의 민주적 원리를 파괴했다. 아울러 경제생활과 성장 영역에 대한 국가 차원의 부적절하고 소홀한 대응이 늘어났다. 권력의 중앙집중은 주로 정치적·문화적 수단에 의존하면서 구성원들을 그런 활동에 가장 먼저 동원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북한에 미래가 있으려면 극장국가로서의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이를 매듭지어야 한다”며 “다원성을 중시하는 현대적 정신에서도 한 사회의 특수한 정통성은 오직 다른 사회들이 인정하고 승인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는 지혜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