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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 박신영 지음 / 페이퍼로드

“(왕자는) 100세쯤 연상인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100년 동안 이를 닦지 않아 입 냄새가 진동해도 꾹 참고 키스를 해야만 했다. 아아, 슬프지만 이것이 바로 소녀들이 한 번쯤 꿈꾸던 백마 탄 왕자의 정체인 것이다.”

책의 한 대목만 뚝 떼어 읽어봐도 왕자에 대한 관점이 도발적이고 재기발랄하다. 요즘 미혼 여성들 사이에서 소리 없이 인기를 끌고 있는 책이 핸섬하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과정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논픽션이라고 한다.

이처럼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왕자병에 푹 빠진 이 시대의 청년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불편하기만 하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불사하는 왕자들의 사정이 실은 낭만적이지 않은 것이다. 작은 나라의 후계자가 될 왕자는 온갖 분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를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이 이웃나라 외동공주와 결혼한 뒤 처가의 왕국을 물려받아 공동 왕이 되는 것이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 동화 속 모든 공주들의 공통점은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왕자의 구애를 받고 결혼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왕자들은 공주가 반할 수 있도록 현란한 말솜씨와 에티켓, 기사도를 몸에 배도록 수련해야 했다”고 봤다.

소녀들이 많이 읽는 명작동화 ‘빨간 머리 앤’에서 길버트는 빨간 머리를 보고 홍당무라고 놀려댄다. 게르만인은 흰 피부와 푸른 눈을 가졌다. 반면 자신들이 몰아낸 켈트족에게 빨간 머리는 비교적 흔한 형질이다. 이들에게 빨간 머리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유전형질이다. 저자에 따르면 게르만족의 후예인 서북부 유럽인들과 그들의 후손인 앵글로아메리카 대륙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쫓아낸 켈트족 사이에서 흔한 빨간 머리는 추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봤다. 빨간 머리를 놀리는 심리의 근저에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박해가 깔려 있다. 저자는 “금발에 푸른 눈이 다수인 서북부 유럽에서는 빨간 머리가 마녀로 여겨지지만 흑발에 갈색 눈이 다수인 남부 유럽에서는 오히려 푸른 눈이 마녀로 몰렸다”고 쓰고 있다.

책은 ‘백설공주’ ‘레 미제라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해리 포터’ 등 다양한 명작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당대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숨어있는 코드 찾기를 통한 명작 읽기의 즐거움과 통찰력을 준다.

“학교 지붕에서는 비둘기가 낮은 소리로 꾸르륵 울었다. (중략) 이제부터는 비둘기까지 독일어로 울어야 할지도 모른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에는 이같은 대목이 나온다. 저자는 이 소설은 프랑스 쪽 입장에서 극우 민족주의적 감정을 토대로 현실을 왜곡해서 쓴 것이라고 꼬집는다.

이야기의 배경이 된 알자스와 로렌 지역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인구는 전체의 11%밖에 되지 않았다. 루이 14세가 일찍이 “알자스는 프랑스 내의 독일이다”고 말한 적도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 지방은 오랜 세월 동안 독일 영토였기 때문에 ‘잃었다’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알자스·로렌을 프랑스 영토라고 우겨야 했던 상황에 대해 저자는 유럽에서 드물게 은을 채굴할 수 있었고 광산 자원이 풍부한 이 지역에 대한 프랑스 쪽의 집착을 들고 있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아메르 선생님이 프랑스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확한 말”이라고 한 내용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자신의 모국어가 있으며, 그 모국어가 그들 모두에게 가장 아름답고 정확한 말이라는 지적이다. 이 책을 읽고 다시 바라보는 명작의 세계는 우리가 처음 만난 동심의 세상과는 분명히 다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19세기에 그려진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그림. 여러 작품에서 공주가 떠돌아다니는 왕자에게 구원되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 페이퍼로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