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011년 11월 23일 이집트 군부의 즉각적인 권력 이양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철양동이를 머리에 쓰고 국기를 든 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부근에 서 있다. 저자는 ‘아랍의 봄’의 경우, 정부와 국민 사이에 복잡성 격차가 너무 커져 정권 교체라는 X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석한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X이벤트 / 존 L. 캐스티 지음, 이현주 옮김 / 반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를 뒤흔들었던 1998년 금융 위기, 전 세계를 테러 공포로 몰아넣었던 2001년 9·11테러,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7년 세계 금융 위기, 2011년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여러 정권을 무너뜨린 2011년 아랍의 봄, 2012년 발생해 현재도 진행중인 유로존 문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전례가 없는 ‘극단적인 사건’이라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잘 해석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사건이면서, 사회적 경제적 파급 효과가 엄청난 사건인 것이다.

복잡성 과학의 대가인 저자는 문명이 붕괴하는 11가지 시나리오를 예로 들어 ‘X이벤트’ 이론을 설명한다. 저자가 이름 지은 X이벤트(X사건)란 발생 가능성이 낮고, 사건 자체가 아주 놀라우며, 그 사회적 파급효과가 엄청난 사건을 지칭한다. 앞서 언급된 사건들이 그 단적인 예로, X사건은 복잡성이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기존 체제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극적 가능성’을 뜻한다. 그렇다면 X이벤트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복잡성의 과부하’를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다. 한 시스템 내의 복잡성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거나, 혹은 상호작용하는 두 시스템 사이에 복잡성 격차가 심해지면, 그 격차를 메우기 위해 X이벤트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아랍의 봄의 경우, 정부와 시민 간의 복잡성의 격차로 인해 발생한 대표적 사례다. 이집트 등 여러 아랍의 독재 정권들은 극도의 국가 통제 경제와 부패, 정실 자본주의 등으로 지극히 낮은 복잡성을 유지한 반면, 시민들은 고등교육과 구글과 트위터 등의 폭넓은 소셜 네트워크 통신 수단 등을 통해 복잡성을 높여왔다. 정체된 정부와 일반 국민 사이에 복잡성의 격차가 너무 커져서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등에서 정권 교체라는 X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X사건 후보로 ▲생각만큼 튼튼하지 않은 인터넷 시스템의 오류에 따른 디지털 암흑 ▲식량 부족으로 인한 세계적 재난 ▲핵폭발 ▲석유 고갈 ▲전염병의 창궐 ▲정전 ▲금융의 몰락 등 11가지를 꼽았다. 하지만 저자는 X사건을 인류 종말과 직결지어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은 세상의 종말에 관한 책은 아니다”며 “이 책의 진짜 테마는 ‘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어떻게 위험을 규정하고 측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X사건이 복잡성의 격차 때문에 발생하는 만큼, 복잡성을 자발적으로 낮추는 것이 X사건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복잡성의 부조화를 해결하는 최상의 방법은 시스템을 ‘복잡하게 만들기’보다는 지나치게 복잡한 시스템을 단순화하는 것이다”며 “예를 들어 금융시장의 경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신종 금융 상품들을 없애거나 확 줄이는 것이 그것들을 통제하는 규정이나 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말한다.

한국도 X사건의 예외는 아니다. 책의 해제를 맡은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장은 “우리 사회는 복잡성 격차가 너무 커진 상태로, 이대로 간다면 X사건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하며 ▲전면적 인터넷 단절 ▲75세 은퇴 시대 도래 ▲동북아 원전 사고 등을 한국의 X사건 후보로 들었다. 그는 이런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면 “파국에 가까운 충격”을 겪겠지만 외부 충격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할 경우, “사회 자체가 새로운 체계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지속 가능성이 높은 사회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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