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요리인 불고기는 멀리 상고시대에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을 누비던 부여계 맥족의 맥적(貊炙)에서 유래했다. 적(炙)은 불(火) 위에 고기(肉)가 올려있는 모양으로 불에 구워 만드는 음식을 총칭한다.

맥적은 맥족이 주축을 이룬 고구려로 계승됐는데 고구려인들은 소, 돼지 등의 고기를 양념장에 재워 두었다가 마늘, 부추를 섞어 통째로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워 먹었다.

오늘날의 양념 불고기에 해당되는데 이 음식에 대해 3세기경 중국 진(晉)나라 때의 수신기에서는 ‘장과 마늘로 조리하여 불에 직접 굽는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따라서 우리 불고기의 기원을 이 맥적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통일신라 시대에 들어와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금하며 고기를 구워먹는 풍속도 맥이 끊겼다. 불고기가 역사에 다시 등장한 것은 고려말엽 우리나라가 몽골족의 지배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맥적이 몽골족이 많이 머물던 개경에서 ‘설야멱적(雪夜覓炙)’이란 이름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설야멱적에는 ‘눈 오는 밤 화로에 석쇠를 얹어 쇠고기를 구운 후 찬물에 담가 지방을 빼서 다시 구워 먹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설야멱적에 대하여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엮은 농서 겸 가정생활서 산림경제에서는 “소고기를 저며 칼등으로 두들겨 연하게 한 다음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기름과 소금을 발라 충분히 스며들면 뭉근한 불에 구워 물에 담갔다가 다시 굽기를 세 차례 하고 참기름을 발라 숯불에 다시 구우면 아주 연하고 맛이 좋다”는 기록이 전한다.

맥적은 이처럼 설야멱적이란 이름을 거쳐 설야적, 설리적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너비아니구이로 발전했고, 1950년 이후에는 오늘날 숯불고기구이, 불고기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선요리제법에서는 고기를 나붓나붓하게 먹기 좋게 썰어 갖은 양념에 재워서 석쇠에 구워 내는 음식을 ‘너비아니’, ‘쟁인고기’로 부른다고 돼 있다.

고기를 맛있게 구우려면 예나 지금이나 양념장에 고기의 연화를 촉진시켜주는 생강즙, 배즙 등을 넣어야 한다. 또 양념한 고기를 석쇠 위에 올려 놓고 약간 센불 위에서 단시간에 구워내면 고기의 향과 촉촉한 육질을 더 실감나게 만끽할 수 있다.

요즘처럼 눈 오는 추운 겨울 밤이 계속될 때 숯불 위에서 고기를 함께 구워 먹으며 선조들이 즐겨 먹던 설야멱적의 멋스러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면 어떨까.

공주대 명예교수·전한국가정과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