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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 리차드 웨스턴 지음, 김광현외 옮김 / 시드포스트

건축학도를 위한 책이다. 하지만 굳이 건축학도가 아니라도 건축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곁에 두고 틈틈이 펼쳐볼 수 있겠다. 물론 정독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책 내용이 그다지 어렵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라는 말이다.

책은, 건축 분야에 영향을 끼친 100가지 아이디어들을 선정, 해설하고 있다. 예컨대 벽, 기둥 등 기본적인 건축 요소들부터 시대정신과 ‘땅의 혼’처럼 건축에 미친 사회적인 개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주제들을 소개한다. 컴퓨터 이용설계, 비막이 피복 등 구체적인 건축기법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해체’와 현상학 등 철학적 개념까지 아우르고 있다. 저자는 아이디어가 처음 생겨난 과정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건축에 끼친 영향 등을 주제당 2페이지에 걸쳐 개괄적으로 서술한다. 아울러 각 주제를 한눈에 보여주는 도판들을 수록, 읽는 이의 이해를 돕고 있다.

예를 들어, 100가지 아이디어 중 첫 번째로 꼽은 ‘벽난로(Fireplace)’를 보자. 저자는 “어떤 기후대에 속해 있든지 사람의 주거와 불은 오늘날에도 거의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며 “열원이자 취사 수단인 벽난로나 화로를 많은 사람들은 건축의 시작으로 여겨 왔다”고 운을 뗀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건축적으로 볼 때, 벽난로는 견고한 내화 재료가 둘러져 있고, 열려 있는 부분과 그 주변이 정교하게 장식돼 있어 주택이나 방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면서 “블루아성과 샹보르성, 퐁텐블로성과 같은 프랑스 성이 벽난로 위 선반의 크기나 예술적 기교로 유명했다면,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벽난로는 대부분 작아지기는 했어도 치장은 풍부했다”고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면 좀 더 전문적인 색채를 띤다.

또 다른 주제인 ‘해체(Deconstruction)’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주류 건축에 대한 도전으로서, 해체주의자들의 계획안에서 드러나는 가장 뚜렷하고도 공통적인 특징은 수평의 바닥면과 수직의 벽, 그리고 정연한 직교 구조 체계와 같은 친숙한 규범들을 공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많은 건물들이 무너질 듯 말 듯하게 보이는데, 공간의 쓰임새에 대한 것은 기능을 고려한 계획으로부터 도출됐다기보다 나중에 가서야 결정되는 문제였다.”

적당히 읽기엔 결코 만만찮은 내용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해체 개념까지 설명하고 있다.

데리다는 이를 통해 서양의 이분법적 권력관계를 노출시키면서 기존 철학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전개해 나갔다는 것. 이어 “데리다의 복잡한 개념을 처음으로 건축에 적용하려고 한 사람들 중에는 피터 아이젠만과 베르나르 추미가 있었다”며 다시금 건축 얘기로 돌아온다.

저자는 “건축이라는 실용적인 예술을 실제로 뒤바꾼 아이디어들은 거의 대부분 벽돌이나 철근 콘크리트처럼 소박한 것이 많다”면서 “건축을 뒤바꾼 가장 유력한 아이디어 가운데 상당수가 겉보기에 평범한 특성을 띠고 있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근대 건축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인 ‘자유로운 평면’은 중앙난방 시스템의 개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 저자는 이어 “중앙난방 시스템 덕분에 건축가는 벽난로와 굴뚝을 설치하지 않아도 됐고, 청소년들은 계속되는 부모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유머러스하게 풀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쉽지만 약간은 어렵고, 어려운가 하면 쉽기도 한 방식으로 건축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끝이 뾰족한 아치로 고딕 건축 양식의 정점을 보여주는 프랑스 아미앵 대성당. 시드포스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