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회의 박상하 집행위원장은 북한까지 참가한 이 대회에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참석하면 더욱 성대한 대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U대회는 IOC 위원장이 오기에는 약간 격(格)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로게 위원장은 U대회 개막식 무렵 파리 세계육상선수권 개막식에 참가한 후 곧바로 베이징으로 건너가 2008 올림픽 브리핑을 받을 예정이어서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습니다.

박 위원장은 혹시나 해서 김민제 씨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는 1974년 스포츠 사진에 입문해 1984년부터는 당시 신설된 체육부에 근무하며 오랫동안 스포츠사진 작가로 활동해 왔습니다. 동·하계올림픽 취재만 10번을 했고, 1988년 이후 지금까지 2년마다 열리는 IOC 총회를 단골 취재하면서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지내는 IOC위원만도 60여 명이나 됩니다. 국제스포츠계의 거물이자 멕시코의 미디어 재벌 마리오 바스케즈 라냐 국가올림픽위원회연합회(ANOC) 전 회장은 그를 아들같이 여겨 집에 초대해 가족들과 여러 번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라냐의 뒤를 이어 ANOC 회장이 된 알사바(쿠웨이트)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은 그를 OCA의 공식 사진작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박 위원장의 요청을 받고 그는 로게 위원장의 당시 비서였던 사라 여사에게 연락합니다. 사라 여사는 세계육상선수권 참가 후 베이징으로 가는 로케 위원장의 일정에 이틀간의 여유가 있음을 알고 위원장에게 베이징 가는 길에 대구에 들를 것을 권합니다. 결국 로게 위원장은 대구 U대회 개막식 당일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 다음 날 방문해 대회의 격을 한층 높여주었습니다.

국제스포츠계는 이렇게 ‘안면’이 중요합니다. 김민제 씨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도 주요 IOC위원을 유치위 인사들에게 소개하는 등 비선 스포츠외교 라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 스포츠는 이제 올림픽에서 ‘톱5’에 오를 정도로 강하지만 외교나 국제행정에서는 아직 전문가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올해 2월 정부 지원으로 국제스포츠협력센터(ISC·이사장 김용순)가 창립됐습니다. 한국 스포츠의 지식기반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것이 창립 배경입니다. 국제스포츠 분야의 초일류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ISC는 지난 10월 세르미망 응(싱가포르) IOC 수석부위원장, 위칭궈(대만) IOC 집행위원을, 지난 14일에는 나왈 엘무타와켈 (모로코) 여성 IOC 부위원장을 초빙해 두 차례 콘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한국과 이런 인연을 갖게 된 인사들은 결국 한국 스포츠의 우군이 될 것입니다. ISC는 스포츠 스타들을 교육시켜 해당 종목의 국제 인력으로 키울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ISC가 한국을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이끄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dy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