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베이징 특파원

임진년 2012년을 보내며 중국 지식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내년 계사년 2013년이 아니다. 과거도 한참 과거인 1942년이다. 우리나라에는 개봉되지 않았지만 당시 중국 사회의 혼란을 그린 ‘1942년’이란 제목의 영화가 나왔고 중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읽는 런민르바오(人民日報) 산하 원스찬카오(文史參考)같은 잡지 등에서는 1942년도에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을 분석하는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70년 전의 무엇이 중국 지식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일까. 중국 신문들의 분석에 따르면 1942년은 2차 세계대전의 분수령 같은 해였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마저 발발하며 1942년 2차세계대전은 정점에 이른다. 미국 등 연합국은 1943년 들어 승기를 잡고 본격적인 전후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1943년 11월 1차 카이로회담, 테헤란회담이 잇따라 열렸고, 12월 1일에는 일본 항복을 위한 연합국의 결의를 담은 카이로선언이 발표됐다.

중국 지식사회가 2013년을 앞두고 1942년 복기에 나선 것은 바로 이 점, 1942년이 한 시대의 분수령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2013년을 변화의 시대로 보고, 1942년을 분석하며 변화의 시대를 맞는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사실 1942년 시대상황은 새로운 갈등으로 점철됐던 2012년의 태평양 지역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1942년 당시 세계는 불황으로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으며, 각국의 갈등 속에 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병적인 민족주의에 빠졌던 독일 나치는 1942년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다.

2012년 올 하반기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남중국해 난사(南沙)군도 등의 영유권을 놓고 갈등이 고조되면서 각국에서는 극우적 민족주의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지만 중국내 신민족주의는 중국 외 다른 나라들에는 또 다른 우환거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지난 11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당의 역사적 사명”이라며 전에 없던 개념을 하나 제시했다. 바로 중화민족이란 단어다. 이전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던 단어다. 중국내 민족의 91% 가량을 차지하는 한족과 나머지 55개 소수민족을 모두 포함하는 새로운 민족개념이다.

중국 지식인들이 1942년을 전후로 한 시대를 새로 분석하면서 주목하는 것은 이런 시대적 동질감만이 아니다. 새로운 국제질서의 출현과정이다. 묘하게도 2012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아시아 주요국들은 신 지도부가 출범해 변화의 채비를 갖춘 상태다. 원스찬카오 최근호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속의 ‘화폐전쟁’이란 제목으로 전후 금융질서를 규정한 ‘브레튼우즈 체제’ 출현 상황을 곱씹으며 당시 중국의 역할을 통렬히 반성해 눈길을 끌었다.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44개국 연합국 대표들이 모여 합의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 달러(금 1온스당 35달러)를 기준으로 세계 각국 통화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등이 설립된 것도 이때다.

원스찬카오는 이 브레튼우즈 체제의 아이디어가 1940년 11월 영국 첩보부대가 독일의 새로운 금융체제 구상안을 입수하면서 나왔다고 전하며, 당시 브레튼우즈 체제 출범의 전 과정을 되새겼다. 보도에 따르면 1942년 미국과 영국이 물밑 줄다리기를 하며 큰 틀의 구상을 마친 상태에서 연합국 회원들 대표를 불러 협의를 시작했다.

원스찬카오는 당시 협의 진행과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중국 대표는 회의장을 벗어나 등산에 나섰고, 소련 대표는 회의 내내 졸기만 했다고 전했다. 기사 행간마다 ‘그때 중국이 힘과 지식만 있었어도 …’하는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글을 읽는 내내 ‘당시 우리 조선은 어디 있었지’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특히 시진핑 새 지도부가 출범한 중국은 1942년처럼 무력하지만은 않다. 중국의 1942년에 대한 복기는 그래서 역대 첫 여성 대통령을 선출해 2013년 변화의 시대를 맞는 우리에게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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