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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 / 김후련 지음 / 책세상

고대 일본 신화를 연구해온 저자는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서 일본인들까지 역사가 오래됐다고 착각하는 ‘천황 숭배’가 근대 메이지(明治) 정부의 작품으로, 일종의 ‘창조된 고전(전통)’이라고 말한다.

근대화의 후발 주자인 일본이 서구의 제국주의에 편입하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메이지 정부의 주도 아래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창조된 게 바로 일본의 천황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외대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에 따르면, 야스쿠니(靖國) 신사도 바로 메이지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나아가 일본 각지에서 다양한 신을 모시고 있는 신사들 대부분이 근대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조차 잘 모르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7장 21절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712년과 720년에 각각 완성된 ‘고지키(古事記)’와 ‘니혼쇼키(日本書記)’에 등장하는 천황 신화 분석을 토대로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떠받들고 있는 ‘일본 신화’와 ‘신도’, ‘천황’의 삼각 구도를 파헤친다.

역사적으로 정치적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신화를 이용해온 일본 위정자들의 행태를 통해, 천황제와 그 뒤에 감춰진 군국주의의 실체와 작동 원리를 설명할 수 있어서다. 가령 일본 중세에 천황제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국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바쿠후(幕府)의 쇼군(將軍)들이 새로운 왕조를 세우기보다 천황의 권위를 통해 다른 무장과 차별화된 관직을 얻어 그들 위에 군림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본 신화가 일본인들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는 한편, 한국(삼한 내지 조선)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우월 의식을 조장해왔다고 주장한다. 진구(神功) 황후의 삼한 정벌이나 한반도 남부에 설치한 식민 기관인 임나일본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야마토(大和)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쓰인 ‘고지키’와 ‘니혼쇼키’가 창조한 천황제 서사는 근대에 들어와서도 일본 위정자들에 의해 대한제국 병합 등에 이용됐다. 메이지 시대 조선을 정벌해서 잃어버린 고토를 회복하자는 ‘정한론(征韓論)’은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뒤에는 천황가의 시조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가 누나이고 신라에서 건너온 스사노오노미코토(須佐之南命)가 남동생이므로 일본과 조선은 조상이 같다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가 창출한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일본 우익이 1997년 결성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같이 8세기의 정치사상에 의해 실제의 역사와 무관하게 철저하게 개편된 일본 신화를 통해 일본사는 물론, 한·일 관계사까지 규정지으려 하는 시도를 우려하고 있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