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중계를 보시는 시청자들은 한국 배구 심판들의 실력에 혀를 내두를지 모릅니다. 키가 200㎝가 넘나드는 거구들이 날리는 서브나 스파이크는 시속 100㎞가 넘는데, 총알 같은 공이 상대 선수의 손끝에 살짝 맞았는지 그냥 나갔는지를 족집게 같이 잡아내기 때문이죠. 사실 경기장에서 강타가 블로커의 손끝을 스친 경우 눈으로는 판단이 힘듭니다. TV 리플레이 장면에서도 손가락에 살짝 묻는 정도이기 때문이죠. 라인을 벗어났는지의 여부는 리플레이로도 확신이 안 설 때가 있습니다.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나간 것도 같고 들어온 것도 같이 보이니까요.

시력이 대평원에서 사는 몽골인처럼 8.0은 돼야 이런 게 보일지 모르는데 안경 쓴 분도 많은 배구 심판은 어떻게 그리 정확하게 잡아낼까요? 경기장 옆에는 경기감독관, 경기판독관들이 앉아 있는데 이들이 리플레이 화면을 보고 사인을 주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이 항의하면 주심은 부심과 선심을 모아 합의판정을 유도합니다. 이 사이 감독관들이 화면을 보고 판단해 주심에게 사인을 보내줍니다. 물론 공식적으로 비디오 판독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 규정은 국내에서만 통하는 로컬룰인데 경기당 한 팀이 1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독관이 화면을 보고 사인을 해주면서 규정과는 달리 사실상 무제한 비디오판독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2005년 프로배구 출범 당시, 비디오판독이라는 로컬룰을 제정하는 데 앞장섰던 김건태 심판은 요즘 후회하고 있답니다. 원래 취지는 심판들이 경기에 더욱 집중하라는 뜻에서 만들었는데 오히려 심판들이 소신 판정을 못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면 TV에서는 마치 심판이 맞았나, 틀렸나를 확인하듯 리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합의판정시 시간을 끌며 감독관석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런 사정은 선수들이 더 잘 알아, 판정이 의심스러우면 무조건 주심에게 몰려가 격렬하게 항의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실상의 비디오판독이 이뤄지고, 심판의 원 판정이 맞으면 ‘아니면 말고’입니다. 이렇게 습관이 든 선수들은 국제대회에서도 같은 행동을 하다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TV 중계에서 판정과 관련한 리플레이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리플레이는 멋있는 플레이가 나왔을 때만 경기당 5∼6회 정도 허용된답니다. 심판 판정은 어떤 경우라도 그대로 인정되며 대신 오심이 많은 심판은 나중 경기 배정에서 제외시키는 식으로 징계를 합니다. 한국배구연맹(KOVO) 심판위원회는 방송 쪽에 판정 관련 리플레이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갑’의 입장인 방송은 ‘볼거리 제공’을 앞세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계가 있는 인간의 눈 때문에 일어나는 ‘오심’을 경기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카메라 렌즈를 실질적인 심판으로 세울지 판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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