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우울 / 에릭 메이젤 지음, 강순이 옮김 / 마음산책

현대사회에서 이제 ‘우울증’은 보편적이고 익숙한 질병으로 간주된다. 급증하는 자살이나 각종 범죄의 원인으로 우울증이 자주 거론된다.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대중 스타들도 TV에 나와 자신이 우울증을 겪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스스로 불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우울, 의욕저하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우울한 감정은 마음을 움직이는 신체물질의 과다분비 혹은 부족에서 기인하는 ‘질병의 일종’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게 보다 현명하고 합리적인 태도라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정신과적 질환으로 간주되는 우울증이란 의료계와 의료산업 종사자들이 경제적 이득 등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질병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예를 드는 설명을 간추려보면 이렇다. 많은 사람 앞에서 연설을 앞두고 있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다.

누구도 이런 불안은 원치 않는데, 의학계에서는 ‘원하지 않는 감정=비정상적인 감정’으로 간주해서 이 같은 불안마저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이렇듯 자신이 원치 않음에도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길게 리스트로 만들어놓고는 이 중 몇 가지에 해당하면 간단하게 우울증이라고 진단하고 항우울제 등을 투여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비판이다.

그렇다면 항우울제를 투여하면 우울한 증세가 감소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저자는 화학적인 약물의 투입으로 우울한 증상이 호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약물을 통해 마음의 작동을 좌우할 수 있다는 증거일 뿐 우울한 증상이 곧 질병이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심리학 박사이면서 오랫동안 심리치료를 해온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불행을 이겨내는 방법이다. 살면서 필연적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불행의 실체를 기꺼이 인정하고 불행의 힘을 줄여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저자는 ‘실존적 이상’을 제시한다. 자신의 자유를 온전히 활용하고 삶을 똑바로 직시한 채 현실을 헤쳐나가면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자는 실존주의는 그 높은 기준의 엄격성 때문에 현실세계에서는 무참하게 실패했지만, 일상을 의미화하면서 높은 이상대로 살고자 하는 노력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불행이라는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이런 실존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고안한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오랜 상담경험 등을 통해 만들어낸 ‘실존 프로그램’은 ‘현실을 직시하라’ ‘중요한 존재가 되기로 결심하라’ 등의 스무가지의 제언으로 이뤄져 있는데, 저자는 다양한 예화 등을 들어가면서 그 제언의 의미와 실행방식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