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기/논설위원

2008년 2월 29일, 이명박 정부가 출범 닷새째에 신장…아니, 확장 개업한 국민권익위원회는 그날부터 거북스러운 하이브리드 조합이었다. 근거법의 실명부터 그랬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라니, 어디(쯤)에서 끊어 읽어야 할지 지금도 헷갈린다. 맨 앞 ‘부패방지’의 리듬을 어디로 이어야 하는가 - ‘부패방지…에 관한 법률’인가,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인가.

부패방지가 국민권익위의 제1 기능임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그 기능의 전부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만큼 ‘부패방지’를 법의 이름으로 끌어올릴 일도 아니었다. 이 정부 출범에 맞춰 종전의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의 기능을 ‘국민권익’이라는 새 깃발로 강제 병탄했으니, 부패방지법을 폐지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없애 흩어버리자니 정권 초부터 반(反)부패 의지를 의심받기 꼭 알맞을 상황…어떻게든 ‘부패, 방지’를 되살려낸 것이다. 그게 저리 어설픈 작명(作名)의 자디잔 무늬다.

그나마도 얼마나 서둘렀으면, 또 서툴렀으면 국민권익위의 기능과 관련해 ‘권리’와 ‘권익’, ‘구제’와 ‘보호’의 조합조차 무질서했을까. 폐지제정 이유 다르고 제12조 1호 다르다. 폐지제정 이유에서는 ‘국민의 권리 구제 및 권익 보호’라더니 제12조 1호의 명문은 ‘국민의 권리 보호·권익 구제…’로 시작된다. 다른 일도 아니다, 입법(立法)이다. 정부와 국회가 입법하면서 어떻게 앞뒤도 제대로 못 맞췄을까.

그렇듯 급조한 법다웠다고나 할까, 그날 관보 제16699호도 시시하다 못해 시원찮았다. 제13조의 국민권익위 위원 정수를 ‘13명’으로 잘못 적었더랬다. 그 오류를 3, 4월 다 보내고 나서 5월 9일에 가서야 ‘15명’으로 바로잡았다. 오류에서 정정(訂正)까지 70일…거참, 칠칠맞지 못하다.

결국 이 정부도 전반적으로 부패한 정권이라는 지탄 속에서 노을이 저물어간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5일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대한민국 순위는 최근 2년 내리 우하향(右下向)이다. 출범 첫해인 2008년 40위에서 2009년과 2010년 모두 39위로 한 계단 올라서는가 했더니 지난해 43위로 미끄러졌고 올해는 45위로 또 두 계단 물러섰다. 이 정부 5년에 다섯 계단 낙하는 한국투명성기구의 지적 아니라도 줄 이은 권력 부패 때문이다.

이 정부가 이렇게 부패의 오명 속으로 저물고 있는 것도 반부패를 소관 위원회의 기능 그 전부가 아니라 일부로 삼은 차착(差錯)의 인과응보(因果應報)라면 지나친 결과론일까. 국민권익위 홈페이지는 여태 낯간지럽다. 국민고충처리위의 국민 권리 구제업무와 국가청렴위의 국가청렴도 향상을 위한 활동, 행정심판위의 행정과 관련한 쟁송 업무가 나뉘어 있던 시절을 ‘혼란과 불편’으로 싸잡고, 통합 이후는 ‘신속하고 충실한 원스톱 서비스 체제’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원스톱? 서비스? 그로써 뭐가 나아졌다는 말인가. 대통령 소속 국가청렴위를 국무총리 소속 국민권익위로 감일등(減一等)시킨 것도 반부패 의지와 역량의 낮은 수위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부패방지와 고충민원 처리, 행정심판 기능을 일원화한 것은 이질적 요인의 물리적 결합밖에 안 된다. 그 사실을 더 확인하기 위해 내년 이후 또 5년을 더 바칠 이유는 없다. 각 대선 후보의 반부패 공약이 이미 차고 넘치지만 그래도 1행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국민권익위를 다시 해체해 그 기능을 재획정하되, 특히 부패방지 기능은 특단의 기구로 다시 독립시켜야 할 것이다.

국민권익위가 마무리해야 할 최우선 현안은 역시 ‘김영란법’의 관철이다. 앞서 8월 22일 김영란 제3대 위원장의 이름으로 입법예고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은 10월 2일 그 예고기간이 끝났었다. 그러나 권재진 장관의 법무부 그 역풍에 밀려 저만치 물러나 있다.

이 정부는 김영란법에 탄력을 더해 반부패법 체계의 일환으로 다듬은 뒤 차기 정부로 이관하길 바란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16일 퇴임하면서 간곡하게 당부한 것도 바로 그 법 제정이었으니만큼.